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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나우 65호] 3+4월호 : 한국영화, 확장된 경계와 미래
한류시장 트렌드 | TREND 1 | 한류NOW 65호
작성자 김아영 게시일 2025.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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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경계를 넘어, K-콘텐츠의 새로운 확장을 이루다  
김희경 인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오징어 게임> 시리즈(2021~2024)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K-드라마 다수엔 한 가지 비밀이 숨어 있다. 드라마 엔딩 크레딧에서 ‘영화감독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지만 영화감독이 만들었고, 영화 스태프가 참여했으며, 영화 같은 뛰어난 작품성과 감각적인 영상미가 돋보인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무너지며, K-콘텐츠의 새로운 확장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중증외상센터>, 티빙의 <스터디그룹>, 채널 A의 <마녀>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 2025년에 공개된 드라마 작품들로,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OTT)과 방송을 통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이 드라마들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모두 영화감독이 연출한 작품에 해당한다. <중증외상센터>는 <좋은 친구들>(2014)의 이도윤 감독이, <스터디그룹>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2018)의 이장훈 감독, <마녀>는 <암수살인>(2018)의 김태균 감독이 만들었다.

이뿐만 아니다. 올해 방영 예정인 작품들에서도 영화감독의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노무사 노무진>은 <리틀 포레스트>(2018) 등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사마귀>는 영화 <화차>(2012)를 연출한 변영주 감독이 첫 드라마인 <백설공주에게 죽음을>(2024)에 이어 연출을 맡은 두 번째 드라마다. 

K-콘텐츠 시장에서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모조리 허물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이다. 최근 나온 드라마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미 과거 우리가 봤던 한국 드라마의 형태와는 많이 달라져 있음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화려한 영상미부터 정교한 미장센(화면 속 세트나 소품 등 시각적 요소의 배열)까지 영화적 기법이 총동원된다. 분량을 제외하곤 사실상 영화와 드라마의 구분이 어렵고, 또 구분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이다. 이제 영화와 드라마는 초장르적 시도를 통해 ‘영상’이란 하나의 큰 카테고리 안에서 자유자재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증외상센터>, <스터디그룹>, <마녀> 포스터 (출처:넷플릭스, 티빙, 채널A)
 
물리적 결합, 그 이상의 과감하고 정교한 크로스오버 
과거 콘텐츠 시장에서 영화와 드라마의 구분은 명확했다. 영화와 드라마는 분량, 추구하는 방향, 소재 등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영화는 2~3시간 안에 압축적이면서도 밀도 높게 스토리를 전개한다. 스릴러, 호러, 액션 등 장르적 특색도 강하다. 극장의 커다란 스크린에 걸리는 만큼 시각적인 효과와 영상미를 부각하는 작품들도 많다. 반면 드라마는 1시간 정도 방영되며, 미니시리즈 기준 16회차로 구성된다. 또한 시청자들이 집과 같은 일상의 공간에서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가족, 사랑 등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주로 활용한다. 

그런데 2019년께 이 같은 간극을 극복하고 크로스오버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는 2016년 글로벌 OTT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이후 3년 정도 지난 시점에 해당한다. 초반엔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시기였으며, 2019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제작이 이뤄졌다. 

그 시작을 알린 대표적인 작품은 2019년 발표된 넷플릭스의 첫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이다. 드라마계의 유명 작가인 김은희 작가가 극본을 쓰고, <터널>(2016) 등을 만든 김성훈 영화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영화감독의 참여에 큰 관심을 보였고, ‘좀비물’이란 장르적 특성이 잘 드러난 다양한 연출 기법에 호평을 보냈다.

 
<킹덤> 촬영 스케치 (출처 : 넷플릭스)
 
이를 기점으로 드라마 분량 면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16부작 중심의 TV 드라마와 달리 회차를 절반 수준으로 줄인 6~8부작 드라마들이 OTT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대신 영화처럼 강렬한 소재와 촘촘한 스토리 전개를 부각하여 몰입도를 높였다. 

비슷한 시기, 방송가에서도 변화의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CJ ENM의 영화 전문 채널 OCN이 ‘영화 같은 드라마’를 표방하며 2019년부터 ‘드라마틱 시네마’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영화감독, 영화 부문 스태프들이 함께 드라마를 만드는 시도였다. 이 경우엔 기존 TV 드라마와 분량은 동일하게 제작하면서도, 스릴러 등 영화에서 주로 활용되던 소재를 가져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해당 프로젝트로 제작된 드라마로는 <트랩>(2019), <타인은 지옥이다>(2019), <번외수사>(2020) 등이 있다. 이 같은 OCN의 시도는 방송계에서 큰 화제가 됐으며, OCN의 작품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양산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토종 OTT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웨이브는 2020년 ‘시네마틱 드라마’를 표방하며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한국영화감독조합과 MBC가 함께 기획했으며, 영화제작사 수필름에서 만들었다. 총 8부작으로 이뤄졌으며, 김의석·노덕·민규동·안국진·오기환·이윤정·장철수·한가람 8명의 영화감독이 한 회차씩 맡아 연출했다. 각각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재난 등을 소재로 삼았으며 영화에서 자주 활용됐던 SF 장르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접목해 호평을 받았다. 

이후엔 ‘드라마틱 시네마’, ‘시네마틱 드라마’와 같이 영화와 드라마의 결합을 전면에 내세우고 강조하는 움직임은 사라졌다. 이 점을 부각하는 것이 큰 화제가 되지 않을 만큼,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투입되는 인력의 다수가 영화 출신 감독, 작가, 스태프 등으로 구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오늘날까지도 영화적 특성을 더한 장르물을 내세워 드라마를 잇달아 만들고 있다. 

그중엔 오랜 경력을 가진 베테랑 감독들이 다수 있다. <수상한 그녀>(2014), <남한산성>(2017) 등을 만든 황동혁 감독은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 시즌 1, 2를 연출해 K-콘텐츠 열풍을 주도했다. <자산어보>(2021), <왕의 남자>(2005) 등의 이준익 감독은 티빙의 <욘더>(2022)를, <범죄도시>(2017)의 강윤성 감독은 디즈니+의 <카지노>(2022)를 만들었다. <부산행>(2016) 등의 연상호 감독은 티빙의 <괴이>(2022), 넷플릭스의 <지옥>(2021) 시즌 1과 시즌 2를 연출했다. <군도>(2014), <돈>(2019) 등을 만든 윤종빈 감독은 넷플릭스의 <수리남>(2022)을 선보였다.

신인 감독들도 드라마 연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티빙의 <몸값>(2022)은 신인 정우성 감독의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칸 국제시리즈 페스티벌에서 한국 드라마 최초로 각본상을 받기도 했다. <기생충>(2019)으로 오스카에서 봉준호 감독과 각본상을 공동수상한 한진원 작가는 티빙의 드라마 <러닝메이트>로 올해 연출 데뷔를 앞두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의 크로스오버는 단순히 인력의 물리적 결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적 특성이 드라마에 고스란히 녹아들며 새로운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다. 원래 드라마를 만들 땐 연출과 극본 집필이 분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영화감독들이 드라마를 만들며 이전과 다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황동혁, 연상호 감독 등은 드라마 작업을 할 때도 연출과 극본을 함께 맡았다. 감독이 직접 극본을 집필하는 경우가 많은 영화계 특성이 드라마에도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감독의 세계관과 철학이 고스란히 투영되는 영화적 작업 방식이 드라마 시장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영화 인력뿐만 아니라 카메라와 조명 등 영화 촬영 장비가 드라마 촬영에 적극 활용되는 점도 눈여겨 봐야 한다. 이에 따라 장비를 활용해 구현하는 촬영 기술과 효과도 거의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결국 작품의 분량이 다르다는 점 이외엔 특별한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 장르의 특성이 유사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류 중심축의 견고한 발전을 위하여 
영화와 드라마의 결합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우선 OTT에서 영화계에 러브콜을 잇달아 보내고 있다. K-콘텐츠 열풍을 이어갈 뛰어난 작품성을 갖춘 드라마를 다수 만드는 것이 OTT의 목표인 만큼, 이를 구현할 영화계 인력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방송사 역시 영화감독들과 손잡고 있다. 잘 만든 드라마를 통해 채널의 가치를 높이고, 국내외 OTT에 방영권까지 판매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이 심화하며, 한편에선 드라마 시장에 영화 인력을 대거 빼앗기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한국 영화산업의 축소를 겪으며 영화 창작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출구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팬데믹이 끝난 현재까지도 극장을 찾는 국내 관객은 많지 않다. 이에 따라 영화 제작을 하기 위한 투자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어렵게 제작을 하고 개봉까지 한다 해도,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한국 상업영화는 30.9%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엔 16.4%의 적자를 낸 것으로 추산된다. 편수로 따졌을 때도 2024년 기준 전체 37편 가운데서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10편에 불과하다. 즉 영화 시장에서 수익을 올리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창작 활동은 물론 생계를 이어가는 것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 제작은 활력소가 되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를 통해 창작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드라마 연출을 기반으로 차기 영화 제작을 위한 투자까지 끌어낼 수 있다. 또한 드라마를 재밌게 본 관객의 관심이 영화로도 연결될 수 있다.

초장르적 실천은 창작자의 세계관 확장을 위한 새로운 무기 그 자체로도 각광받고 있다. 상업 영화는 세대를 불문하고 최대한 많은 관객이 좋아할 만한 소재를 내세웠을 때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면 감독이 자신만의 개성을 극대화하여 세계관을 구축하고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갖긴 쉽지 않다. 하지만 영화와 드라마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게 되며, 감독은 세계관을 마음껏 확장할 수 있게 됐다.
 
(좌)연상호 감독 (출처 : WOW POINT), (우) <정이> 제작 현장 (출처 : 넷플릭스)
 
연상호 감독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초현실적이고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주로 담아내는 연 감독은 영화 <부산행>(2016)으로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이후엔 큰 성과를 내지 못했었다. 만약 영화만 계속 만들었더라면, 그의 독창적인 이야기와 세계관이 널리 알려지긴 어려웠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연출작인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2021)이 공개되며, 글로벌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연 감독은 영화 <정이>(2023),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2024), 드라마 <지옥> 시즌 2(2024)를 OTT에서 잇달아 선보이며 세계관을 넓혀 갔다. 이 과정에서 그의 세계관은 다양한 캐릭터와 스토리로 변주되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덕분에 국내 마니아에 국한됐던 팬층이 글로벌로 크게 확장되는 계기도 마련됐다.

영화와 드라마는 K-콘텐츠 시장을 떠받치는 명실상부한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축이 무너져 버린다면 더 이상 한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 그래서 영화와 드라마의 결합은 더욱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나아가 늘 새로움을 찾는 대중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길이라 할 수 있다. 시시각각 쏟아지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도 대중은 항상 갈증을 느끼고 있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콘텐츠에 대 강렬한 목마름이다. 그 답이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다. 장르의 형식을 바꾸고 경계를 허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새롭게 다가갈 수 있다. 그중에서도 영화와 드라마의 과감한 크로스오버는 참신한 K-콘텐츠를 만드는 핵심 열쇠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영화 넘어 확장한다, 극장의 다양한 실험  
성찬얼 씨네플레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2019년 역대 최다 관객, 최대 규모를 기록한 한국영화계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전 지구적 재앙에 한국 극장가 역시 관객 수가 급감했고, 그 난 자리를 가리기 위한 고육지책이 이제는 한국 극장 문화 흐름을 바꾸고 있다. 전반적으로 침체기인 한국 영화산업에서 대중과 맞닿는 창구인 극장은 관객 수 하락 위기를 타개하고자 강구책을 찾았고, 그것이 기존 장편영화 상영 이외의 ‘차별화된 콘텐츠 상영’으로 길을 트는 계기가 됐다. 요컨대 한때 장편영화 상영의 전유물이었던 극장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중엔 한국영화의 위기와는 마치 정반대로 현재 비상하고 있는, 이른바 K-콘텐츠의 활용이 눈에 띈다. 극장은 어떻게 이 비상사태에 대응하고 있는가. 그 강구책들을 두루 살펴보면, 앞으로의 극장 문화의 변화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기회가 될 것이다. 
 
가장 도발적인 상영, 숏폼 무비 
과거 극장가를 가장 크게 흔든 사건이라면, ‘OTT 독점 콘텐츠 상영’을 꼽을 수 있다. 넷플릭스 영화 <옥자>(2017)가 극장 개봉을 추진할 때, 극장가는 보이콧 움직임을 보였다. 기존 상영작들의 ‘극장 개봉 후 2차 매체 공개’라는 관행을 깨고 인터넷 플랫폼과 동시 공개하는 것이 영화 유통망을 해친다는 요지였다. 이처럼 영화제나 특별 상영 등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면 상영의 벽이 다소 높았던 극장은 최근 이보다 더 도발적인 콘텐츠 상영을 진행했다. 바로 숏폼 무비다. 

숏폼(short-form)은 일반적으로 1~2분 단위 짧은 영상을 뜻한다. ‘짧다(Short)’와 ‘형태(Form)’를 결합한 단어이므로 이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면 숏폼 무비는 쉽게 말해 단편영화다. 세심하게 단편-중편-장편으로 구분할 수 있으나, 통상적으로 단편영화는 러닝타임 50분 이내의 영화를 뜻한다. 단편영화란 단어 대신 '숏폼 무비'라는 새로운 용어가 정착하게 된 원인으로는, 일반적인 단편보다도 더 짧은 작품이 극장에서 정식 개봉 및 상영하는 데다, 좀 더 확실한 콘셉트를 챙긴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장착 카메라로 촬영한 <밤낚시> 한 장면 (출처: 예고편 캡처본)
 
이 숏폼 무비의 출발선을 끊은 건 문병곤 감독의 <밤낚시>(2024)이다. <밤낚시>는 홀로 밤낚시를 하는 한 남자가 괴이한 현상을 목격한다는 내용이다. 모든 장면을 자동차에 장착된 카메라로 촬영한 독창적인 콘셉트가 돋보인다. 이처럼 독특한 형식을 취한 이유는 현대자동차와 협업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즉 숏폼 무비는 확실한 콘셉트를 기반으로 자본, 혹은 산업 인사와의 협업을 이끌어 내 기존 단편영화와 분명한 차별점을 둔 것이다. <밤낚시>에 이어 개봉한 <4분 44초>(2022) 또한 그렇다. <4분44초>는 8편의 영화를 엮은 옴니버스 스릴러 영화이다. 이 같은 시도는 이미 <신촌좀비만화>(2014),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2012~2016) 등으로 전개된 바 있으나, <4분44초>는 거기에 ‘4’를 콘셉트로 내세웠다. 4분 44초짜리 단편 8편을 모아 44분 영화를 완성한 것이다. 극에서도 4를 강조하며 4라는 숫자를 콘셉트로 내세웠고, 관람료 또한 4천 원으로 책정해 분명한 콘셉트로 관객들의 흥미를 이끌었다. 배우 나문희의 협조 아래 나문희가 주인공인 생성형AI 단편영화를 묶은 옴니버스 영화 <나야, 문희>(2024), 영화의 모든 요소를 생성형AI로 제작한 <엠호텔>(2024) 또한 생성형AI로 제작했다는 확실한 콘셉트를 내세웠다. 이 세 작품은 <밤낚시>처럼 각각 영화사 궁, 배우 나문희, CJ ENM이란 기존 업계 주체들과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나야, 문희>의 한 장면 (출처: Kobis)
 
이처럼 기존의 단편영화가 아닌 숏폼 무비라는 형태의 상영은 문화 콘텐츠 소비 행태와 극장가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0년대 스냅챗(Snapchat), 바인(Vine), 틱톡(TikTok) 등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은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을 게시하는 플랫폼으로 숏폼 영상을 유행시켰다. 이 소비 행태는 곧 장편 영상을 게시하는 기존 플랫폼으로도 번졌고, 전체 조회수가 6개월 만에 5조 건 이상을 달성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오윤희, 2022. 6. 16.). 이처럼 숏폼 영상이 롱폼 영상의 요약이 아니라 새로운 영상 소비 형태로 자리 잡은 결과, 현재 장편영화의 상영시간이 부담되는 이들이 늘었고, 그에 따라 극장 또한 숏폼 콘텐츠의 필요성을 절감해 이러한 기획 콘텐츠 상영으로 이어진 것이다.

물론 이는 단순히 숏폼 콘텐츠의 필요성 때문만은 아니다. 보통 120분 내외의 영화를 상영한다고 가정할 때, 관객의 입퇴장 시간 및 정비 시간을 고려하면 1회 상영당 약 150분이 소요된다. 오전 9시에 극장문을 열어 자정에서 새벽 1시까지 심야 상영을 한다고 가정하면 대략 5~6회 상영만 가능하다. 그마저도 120분 내외일 때 가능한 것이지 상영시간이 이보다 길다면 4~5회로 상영횟수가 준다. 모든 영화가 상영시간을 천편일률적으로 맞추는 것은 아닐 테니, 분명 1회 상영을 할 수 없는 시간대가 생기기 마련이다. 극장 측은 이런 것을 계산해서 최다 상영횟수로 다수 영화를 상영할 최적의 시간표를 짜야 한다. 그것도 관객의 수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한 시간 내외로 편성할 수 있는 콘텐츠가 있다면, 상영관의 자투리 공백을 활용해 극장 전체의 시간표를 짜기도 용이해진다. 즉 숏폼 무비는 관객의 콘텐츠 수요에 맞추는 것은 물론이고 제공하는 극장의 운영에도 분명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극장의 새로운 먹거리 종결, 콘서트 실황 
한편 공급도, 수요도 폭증한 콘텐츠는 ‘콘서트 실황’이다. 201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 해에 한 편이나 개봉할 정도로 특별한 콘텐츠였는데, 팬데믹을 지난 2023년부터 10편 이상 개봉하는 극장의 단골손님이 됐다. 특히 2024년은 22편 개봉한 것은 물론이고, 그중 1만 관객을 돌파한 편수도 14편에 달한다. <임영웅ㅣ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2024)은 약 35만 명을 동원해 콘서트 실황 영화 최다 관객 수 경신, 콘서트 실황 영화 최초 100억 원 매출이라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임영웅│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 SCREEN X 버전 (출처: 예고편 캡처본)
 
콘서트 실황 영화의 이와 같은 추세가 눈길을 끄는 건 ‘극장 개봉’으로 거둔 성과란 점이다. 아이돌 문화가 만개한 이후, 인기 가수라 할지라도 콘서트 실황은 방송, DVD, 블루레이,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등으로 발매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드물게 개봉하는 콘서트 실황은 대부분 국내 가수가 아니고 해외 가수의 것이었다. 그러다 2020년대 제작 편수 및 개봉 편수가 부쩍 늘었는데, 두 가지 이유가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먼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영화 제작 및 극장 방문객 수가 확연히 준 것이다. 일상에서 가볍게 극장을 찾는 관객 대다수가 코로나19로 극장에 발길을 끊고, 제작사들 또한 제작을 줄이거나 개봉을 미루면서 극장은 더이상 영화라는 매체에 의지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등장한 콘텐츠가 인기작 재개봉이나 콘서트 실황, 혹은 강연 프로그램, 상영관을 개조한 특별 공간이다. 여기에 콘서트 실황이 특히 도약하게 된 지점에는 촬영 관련 기술의 비약이 바탕이 됐다. 2013년부터 정착한 4K 해상도 촬영은(설령 질적으로 차이가 나더라도) 스마트폰에 탑재될 만큼 보급화됐으며, 이에 따라 고해상도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가 다양해졌다. 뿐만 아니라 각 기기가 가벼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용도에 따라 이동성을 극대화한 기기들이 등장 등장하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실황을 담아야 하는 콘서트 실황 제작에도 이점이 됐다. 

물론 그럼에도 이 콘텐츠의 최대 원동력은 K-콘텐츠의 글로벌화, 즉 K-POP의 급부상에 있다. BTS(방탄소년단)의 첫 콘서트 실황 영화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2019)이 한국에서 34만 명을 동원하고 북미에서 350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은 K-POP의 영향력을 충분히 입증하는 결과였다(BTS의 첫 영화는 <번 더 스테이지: 더 무비>이나 타플랫폼으로 선공개한 콘텐츠이기에 제외한다). K-POP의 비상은 영화의 부재를 채울 새로운 콘텐츠를 갈망한 극장 측의 사정, 기술적 발전으로 보다 다양한 화면을 고화질로 담아낼 수 있게 된 현장의 환경이 맞물려 콘서트 실황 영상 제작을 촉진시켰다. 여기에 부가적인 이유를 하나 덧붙이자면,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OTT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 중 특별관 이용자가 확연하게 늘었다. 극장 개봉과 OTT 공개의 간극이 짧아진 시점에서 극장에서 보는 경험을 '빨리 본다'가 아니라 '특별하게 본다'로 무게추가 옮겨진 것이다. 이에 따라 극장 역시 특별관 유행에 원동력이 될 콘텐츠가 필요했고, 콘서트 실황이 이 조건에 적합했다. 콘서트 실황은 스크린X, 체험형 4D, 나아가 2024년 개봉한 <아이유 콘서트: 더 골든 아워>에 와서는 IMAX로 상영포맷을 확장했다. 특히 2차 매체(DVD/블루레이) 등이 가지는 비중이 상당히 적은 한국 영화산업에서 기존의 고정 팬덤 외의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극장 개봉이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극장은 특별 콘텐츠 개념으로 티켓값을 차등화해 수익을 남기기에 콘서트 실황이 적당했다. 즉 콘서트 실황은 제작사·소속사·극장 모두 손해 볼 것 없는 콘텐츠로 판단, 산업의 새로운 주력 상품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해관계를 가장 빠르게 파악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활용한 기업은 CJ 4DPLEX다. 멀티플렉스 CGV의 자회사이자 체험형4D 시스템의 대표격인 CJ 4DPLEX는 다양한 콘서트 실황 영화에 제작 및 배급사로 참여, 콘텐츠를 확보할 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에도 추진력을 더했다. 각국에서 ScreenX, 4DX 방식으로도 상영한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는 전 세계 360만 명의 관객을 모았고(CJ 뉴스룸, 2023. 7. 31.) <블랙핑크 월드투어[본 핑크] 인 시네마>는 930만 달러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기록한 걸그룹 콘서트 영화라는 신기록까지 달성(CJ 뉴스룸, 2024. 9. 12.)하는 등 K-POP 콘서트 실황 영화와 4DX·스크린X 상영은 화제성과 매출을 챙기는 원동력이 됐다. 

콘서트 실황은 단순한 녹화본이 아닌 실제 공연과 함께 진행하는 ‘라이브뷰잉’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라이브뷰잉은 콘서트를 촬영한 영상을 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공연의 생중계를 극장에서 관람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라이브뷰잉이 전무했던 건 아니다. 과거 스포츠 국가대표팀 경기, 애니메이션 콘서트, J-POP 콘서트 등에서 하는 생중계가 존재했다. 다만 국내 콘텐츠 관련 라이브뷰잉은 특정 방송사와 협업으로 진행하는, 방송 단체 관람 개념에 가까웠다. 그러나 2022년 BTS의 ‘아미밤 상영회’을 시작으로 국내 가수들의 라이브뷰잉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라이브뷰잉은 제작사·소속사와 극장의 협업으로 극장에 단독 중계하는 것이므로 보다 오리지널리티를 챙기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라이브뷰잉이 반드시 극장에서만 이뤄지는 건 아니고 때로는 타 인터넷 플랫폼에서 공동으로 중계하곤 하지만, 제대로 된 영상과 음성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은 보통 극장에 국한되기 때문에 팬들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2025년 2월 기준 가장 최근 진행한 라이브뷰잉은 ‘TAEYEON CONCERT - The TENSE’인데 국내뿐만 아니라 대만, 태국, 홍콩, 일본 등 아시아 전역으로 진행됐으며 국내는 메가박스가, 인도네시아는 CGV가 담당했다.

이 부분에서 콘서트 실황의 부흥과 별개로 현재 문화계에서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는 뮤지컬이 실황 영화로는 크게 확장되지 못하는 건 특기할 만하다. 현재 뮤지컬 시장은 티켓 매출만 4,651억 원(예술경영지원센터, 2025)에 육박할 정도로 부흥했지만, 실황 영화 제작 편수는 크게 늘지 않았다. 흥행 실적 또한 최대 5만 명 관객에 그친다. 이는 상대적으로 긴 상영시간, 관객이 원하는 캐스팅 조합을 짤 수 없다는 한계, 실제 공연 중계 영상을 활용할 수 있는 콘서트 실황과 달리 공연 실황은 실제 공연 반복 촬영의 난점 등 핸디캡이 있다는 것 등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정답을 찾는 변화의 시기 
이 밖에도 극장은 ‘영화’ 상영관이란 기존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난 다양한 체험 문화를 울타리 안으로 가져오고 있다. 각 멀티플렉스는 국내외 오페라, 박물관 투어 영상을 상영하는 것은 물론, 실제 큐레이터가 해설하는 프로그램 등 진행하고 있다. CGV는 강연 프로그램이나 상영관을 개조한 클라이밍짐을 공개했으며 최근 메가박스는 뜨개질하면서 영화 관람을 할 수 있는 ‘뜨개방 상영회’를 열었다. 여전히 한국영화의 답보가 지속되는 가운데 극장의 공간을 다각도로 활용하려는 발상이 여러 기획과 이어지는 것이다. 
 
<대니초 – 코리안 드림> 포스터 (출처: KMDB) 
 
앞서 서술한 기존 콘텐츠의 활용 측면에서 보자면 코미디 관련 상영이 가장 눈에 띄는 도전이지 싶다. CGV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대니 초의 쇼를 담은 <대니초 – 코리안 드림>(2023), ‘매드몬스터’, ‘쥐롤라’ 등을 탄생시킨 곽범-이창호 콤비 ‘빵송국’의 공연 <만담>(2025)을 정식 개봉한 바 있다. 2021년 코미디 쇼 <스탠드업 코미디 쇼그맨>을 선보인 전례에 이어 코미디 레이블 ‘메타코미디’와 협업으로 코미디의 새로운 도전을 돕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위기 타개 이상의 로드맵을 엿볼 수 있겠다.

물론 극장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영화계의 침체가 지속되는 지금, 극장의 도전이 반드시 큰 성과로 나타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위의 사례들을 시도한 2024년 결산에서도 국내 멀티플렉스 3사 중 국내 사업만으로 흑자를 달성한 곳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신새롬, 2025. 2. 28). 그러나 지금까지 해온 것을 정답이라고 우긴다면 앞으로 끊임없이 변화할 관객이 낼 문제에 답을 맞히지 못할 것이다. 제출하는 답안지가 언젠가 새로운 정답으로 채점되는 그 순간을, 극장은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신새롬 (2025. 2. 28.). 길어지는 극장가 침체…"앞으로가 더 걱정". <연합뉴스>.
오윤희 (2022. 6. 16.). 유튜브 쇼츠 1년 새 4배씩 성장…Z 세대 호응에 조회 수 5조 돌파. <조선비즈>.
예술경영지원센터 (2025). 「2024년 총결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
CJ 뉴스룸 (2023. 7. 31.), BTS 부산 공연 실황, CGV 4DX와 ScreenX로 본다.
CJ 뉴스룸 (2024. 9. 12.). CJ 4DPLEX, 역대 8월 최고 실적…북미 시장 및 공연 실황 콘텐츠. 
 



 


 

위기 속에서도 계속되는 한국 독립영화의 도전  
김영우 (전)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팬데믹 이후 여러 객관적인 지표에서 뚜렷한 위기를 보여주고 있는 한국 영화산업이 좀처럼 회복의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산업계의 전반적인 위기는 한국 독립영화 생태계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공적 지원제도의 축소와 여전히 열악한 배급유통구조, 그리고 독립영화를 찾는 관객 수의 전반적인 감소라는 악재들과 만나면서 독립영화 생태계와 창작자 커뮤니티의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단편을 포함해 한국 독립영화 제작 편수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고, 국내외 영화제와 극장을 통해 관객을 만나는 한국 독립영화의 도전은 위기 속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팬데믹 시기를 지나면서 국내외 주요 영화제와 극장에서 주목받은 한국 독립영화를 일별하면서, 한국 독립영화 생태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예술영화 지원제도 및 개봉지원제도 비롯해 다양한 공적기관의 지원이 어떻게 마중물 역할을 해왔는지를 살펴보고, 최근 한국 독립영화 관련 주요 정책들의 변화에 대해 간략하게 짚어보기로 한다. 
 
주요 국제영화제 시즌의 시작과 함께 만난 한국 독립영화 
2024년 국내 영화제를 통해 공개되었거나 2025년 새롭게 공개할 예정인 한국 독립영화들은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주요 국제영화제에 출품하면서 새해를 시작했다. 1월에 열리는 선댄스영화제를 비롯해, 네덜란드 로테르담국제영화제(이하 ‘로테르담영화제’),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이하 ‘베를린영화제’)로 이어지면서 당해 영화제 시즌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특히 베를린영화제와 로테르담영화제는 한국 독립영화와 신진 작가를 꾸준히 소개해 온 주요한 창구여서, 한국 독립영화 창작자들이라면 1순위로 두고 참여하고 싶어 하는 영화제다.

지난 2월 13일부터 23일까지 열린 제75회 베를린영화제에는 총 8편의 한국영화가 초청되었는데, 홍상수 감독의 신작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가 장편경쟁 부문에, 민규동 감독의 <파과>가 스페셜 부문, 지금 국내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은 스페셜 갈라 부문에 선정되어 주목받았다. 상영 편수와 참여 관객의 규모 면에서 토론토국제영화제와 더불어 최대 규모의 영화제로 평가받는 베를린영화제는 대중적인 상업영화에서 작가주의 영화, 그리고 실험적이고 정치적인 영화까지 영화 선정에 있어서 다양하고 폭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영화제다. 특히 한국 독립영화와 인연이 깊은 포럼(Forum) 섹션은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를 소개하고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 온 주요 섹션 중 하나로, 베를린영화제의 정체성과 다양성을 유지하는 주요 동력이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포럼에는 2008년 <푸른 강은 흘러라> 이후 무려 16년 만에 두 번째 장편을 선보인 강미자 감독의 <봄밤>, 푸티지 다큐멘터리 또는 비디오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 김무영 감독의 <폭력의 감각>이 초청받았다. 한국 독립영화 관객들에게는 잘 알려진, 이용승 감독의 <10분>(2013), 김대환 감독의 <철원기행>(2014), 장우진 감독의 <춘천, 춘천>(2016), 박송렬 감독의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2021) 등이 그동안 포럼 부문에 초청되었고,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2016), 김보라 감독의 <벌새>(2018), 김혜영 감독의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2024) 등은 제너레이션 부문에서 수상하며 주목받기도 했다.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포럼 익스펜디드(Forum Expanded)’라는 부문이 있는데, 미디어, 비디오, 설치작품과 전시 작품들을 소개하는, 제목 그대로 ‘확장된 영화’를 상영하는 섹션으로, 올해는 차재민 작가의 <광합성 하는 죽음>과 이장욱 작가의 <창경>이 초청되는 성과를 보여줬다.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청작 강미자 감독의 <봄밤>(좌)과 김무영 감독의 <폭력의 감각> (출처: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린영화제와 더불어 신인 감독이라면 누구나 선호하는 로테르담영화제는 베를린영화제에 비해 신진 감독의 발굴과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를 지지한다는 점을 내세우며 새로운 작가의 등용문으로 오랫동안 역할을 해온 영화제다. 최근 작품 선정 경향이나 영화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있지만, 여전히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과 애정을 가진 영화제다. 무엇보다 신인 감독의 첫 번째나 두 번째 장편을 대상으로 하는 타이거 장편경쟁 부문을 통해 주목받으며 거장이나 작가로 성장한 역대 수상자의 면면이 아주 화려한데, 한국 감독들만 보더라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의 홍상수 감독, <질투는 나의 힘>(2003)의 박찬옥 감독, <똥파리>(2009)의 양익준 감독, <무산일기>(2011)의 박정범 감독, <한공주>(2014)의 이수진 감독 등이 타이거상을 수상했고, 김용훈 감독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020)은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 독립영화와 로테르담영화제의 좋은 인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수상한 감독들 외에도 로테르담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한국 독립영화 감독들이 많은데, 박기용, 이광국, 장건재, 김경묵, 김태용, 윤단비 감독 등을 언급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초청하는 한국영화 편수가 줄고 있는데, 올해는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다큐멘터리 <모던코리아>가 2021년과 2022년에 이어 다시 초청되었고, 바태 감독의 <가락>, 그리고 여자씨름을 다룬 다큐멘터리 <모래바람>이 초청됐다. 

국제무대에서 주목받은 한국 독립영화의 다양성 
국내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영화제를 비롯해 주요 해외 영화제들은 한국 독립영화 창작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플랫폼이다.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영화산업 환경에서 제작과 배급, 홍보까지 진행해야 하는 한국 독립영화로서는 영화제라는 공간을 활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외 주요 영화제로 국한해서 보면, 한국영화 뉴웨이브를 주도한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홍상수 감독 등 일군의 감독들을 환대했던 유럽의 국제영화제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한국의 젊은 창작자들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칸국제영화제와 베니스, 베를린, 로카르노, 토론토 등 주요 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 독립영화와 작가영화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가영화를 지지해 온 로카르노영화제의 경우,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이 대상에 해당하는 황금표범상을 수상했고,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1998)을 비롯해 박정범 감독, 장건재 감독, 김대환 감독 등의 작품을 선정하며 한국 독립영화와 작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왔다. 

극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과 언론의 관심이 덜하지만, 해외 영화제와 해외 진출에 가장 적극적이면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곳은 한국 다큐멘터리다. 암스테르담다큐멘터리영화제를 비롯해, 일본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권위 있는 야마가타다큐멘터리영화제, 그리고 캐나다에서 열리는 핫독스 등 해외 유수의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의미 있는 성취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송환>(2003)으로 선댄스영화제에서 수상한 김동원 감독을 비롯해 홍형숙, 변영주, 문정현 감독의 영화들이 야마가타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하거나 수상하면서 한국 다큐멘터리의 역량을 보여주던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던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2014), 박경근 감독의 <철의 꿈>(2013), 정윤석 감독의 <논픽션 다이어리>(2013)까지 일련의 작품들은 한국 다큐멘터리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음을 선언적으로 보여주는 결정적인 순간으로 남았다. 

또한, 암스테르담다큐멘터리영화제를 통해 수상한 이승준 감독의 <달팽이의 별>(2011)을 비롯해, 관객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았던 강상우 감독의 <김군>(2018), 칸영화제 ACID부문에 초청되었던 윤재호 감독의 <마담 B>(2016), 이일하 감독의 <모어>(2021), 박혁지 감독의 <시간을 꿈꾸는 소녀>, 로테르담영화제에 초청된 이동우 감독의 <셀프-포트레이트 2020>(2020), 남아름 감독의 <애국소녀>(2022), 김일란 감독의 <에디와 앨리스>(2024) 등이 국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제48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상영작 안재훈 감독의 <아가미>(좌)와 김동철 감독의 <퇴마록> (출처: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KMDB)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에 비해 열악한 환경을 갖춘 한국 애니메이션도 2024년에는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줬다.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안재훈 감독의 <아가미>와 더불어 미드나잇 스페셜 부문에 초청된 김동철 감독의 <퇴마록>과 허범욱 감독의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까지, 2024년은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의미 있는 한해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장르영화계의 칸영화제’로 불리는 스페인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파묘>와 함께 초청받은 김민하 감독의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은 장르영화의 붐을 타고 국내 개봉과 함께 아세안 국가에서 극장개봉을 하기도 했고, 이윤석 감독의 <6시간 후면 너는 죽는다>도 아시아 국가에서 개봉으로 이어지는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한국 독립영화의 마중물로서 독립예술영화 창작・제작지원 프로그램  
극영화에서 다큐멘터리, 그리고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한국 독립영화들이 국내외 주요 영화제를 통해 주목받았다고 해서,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한국 독립영화 창작자와 작품들이 기여해 온 성과는 정량적인 지표와 숫자로 판단할 수 없다. 문제는 한국 독립영화가 지속적으로 창작을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를 비롯한 다양한 공적 지원제도가 외부 환경에 따라 정책적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 독립영화의 생태계 유지와 다양성에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해온 영진위의 독립예술영화 창작・제작지원 제도는 면밀하고 세심한 정책적 지원이 더욱 절실한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녹록지 않다.

영진위 독립예술영화 지원은 크게 기획개발과 제작지원, 그리고 개봉지원으로 구성되는데, 2023년을 기점으로 전체 지원 예산 규모가 크게 줄었다. 예를 들어 독립예술영화 장편 제작지원의 경우 2023년 총 88.58억 원에서 24년에는 52.72억 원으로 감소했고, 다큐멘터리 제작지원은 23년 총 17.7억 원에서 24년 9.93억 원으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는데, 감소한 2024년의 지원 규모는 2025년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대신, 영진위는 올해 순제작비 20억에서 80억 미만 장편 실사 극영화를 지원하는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프로그램’을 신설하며 작품성과 상업성을 겸비한 한국영화가 나올 수 있도록 역할을 하겠다고 설명했는데, 전체 확보된 99.3억 예산으로 지원할 수 있는 영화 편수가 제한적이고, 특정 장르나 주제로 편중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급변하고 있는 영화산업 환경을 고려할 때 실제 효과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한편의 독립영화가 관객을 만나기까지
공공기금의 제작지원을 통해 완성된 독립영화 <장손>(좌)과 <딸에 대하여>(우) 포스터. (출처: KMDB) 
 
영진위 지원이 중요한 이유는, 지원 전후로 타 공적기관의 제작지원을 추가로 받아 기획에서 실제 제작으로 이어지고, 이후 배급을 통해 관객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주목받았고 2024년 개봉을 통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환대받았던 오정민 감독의 <장손>의 경우, 감독이 2016년부터 완성된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에 공모해 다섯 번 탈락 끝에 마침내 2021년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된 경우다. 이후 <장손>은 경기콘텐츠진흥원 제작지원, 경남 로케이션 인센티브 지원사업, 영진위 독립예술영화 개봉지원에 선정되면서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이미랑 감독의 <딸에 대하여>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영진위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과 인천영상위원회 제작지원 및 개봉지원, 그리고 성남문화재단의 성남 독립영화 제작지원을 받아 완성한 영화인데, 성남 독립영화 제작지원 프로그램은 그동안 김보라 감독의 <벌새>,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 정해일 감독의 <언니 유정>(2024)을 제작 지원하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장건재 감독의 <한국이 싫어서>(2024)도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을 받으면서 타 기관과 파트너를 통해 제작비를 마련해 원하는 도전에 나설 수 있었던 케이스다. 이외도 다수의 한국 독립영화가 치열한 경쟁과 좁은 문을 거쳐 공적 지원을 받아 관객을 만나오고 있다.

극영화뿐만 아니라, 전술한 대로 해외에서 큰 성과를 보여온 한국 다큐멘터리 제작지원 규모는 2023년 총액 17.7억 원(장・단편 38편)에서 24년 9.93억 원(장・단편 18편)으로 7억 원 넘게 축소되더니, 2025년에도 총 9.93억(장・단편 12편)으로 전년과 동일하다. 다큐멘터리의 경우, 국제무대에서의 성과가 영진위의 지원뿐만 아니라 방송콘텐츠 관련 지원제도 등의 공적 지원을 기반으로 한 투자와 노력에 따른 결과라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해외 영화제를 비롯한 국제 무대 진출에 적극적인 감독과 프로듀서들이 결합하면서, 최근까지도 국내를 넘어 해외 무대에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데, 지난 10년간 한국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성장과 성취를 보여준 다큐멘터리 부문에 대한 지원 규모가 감소하는 점은 산업의 흐름과 현장의 요구와는 배치되는 현실이다. 

제작지원-영화제-극장개봉이라는 순환구조
개론적인 차원이지만, 영진위의 공적 지원이 줄어들면, 한국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 등 비(非)상업적 영화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 또한 리스크가 가장 큰 단계인 기획개발단계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면, 초기 투자가 부담스러운 신생 제작자나 중소 규모 제작사의 진입과 도전이 줄어들 것이고, 개봉배급지원의 축소는 극장의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몇 년간 한국 독립영화를 둘러싼 정책 방향이 또다시 급변하고 있다. 한국 독립영화는 정치적 상황과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정책과 지원 규모에 변동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팬데믹을 기점으로 OTT 플랫폼이 영화 산업을 주도하면서, 영화 문화와 관객의 성향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총체적 위기 속에서 독립영화와 영화제에 대한 정책적 지원 후퇴는 한국 독립영화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 즉, 공적 지원에서 시작해,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주목을 받고 개봉으로 이어지는 한국 독립영화 생태계의 순환구조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창작・제작지원 규모 축소와 함께, 국내 영화제 지원 규모의 축소, 그리고 2024년에 갑자기 폐지된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사업 등 일련의 정책들은 한국 독립영화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독립영화의 경우, 아무래도 국내외 영화제를 통하지 않고서는 개봉이나 배급의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특히 창작자로서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도 국내외 영화제를 통한 일종의 ‘인증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 가속화되는 극장의 양극화와 획일성은 대안적인 영화와 다양성을 지닌 영화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더불어 독립영화와 감독들이 활발하게 창작하고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인 영화제에 대한 지원은 독창적이고 도전적인 한국 독립영화가 꿈꿀 수 있는 토양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속가능한 토양에서 만들어진 다양하고 개성 있는 한국 독립영화는 국제무대에서 주목받으며 한국영화의 독창성과 다양성을 펼쳐 보일 것이다. 

 



 


 


 

봉준호, 박찬욱을 이을 다음 세대 영화인이 나오기 위해서는  
임수연 미디어 저널리스트

코로나19 이후 한국 영화 위기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유독 영화 산업의 타격이 컸던 이유로 티켓값 상승 그리고 한국영화의 퀄리티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가격이 오른 만큼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뻔한 소재와 캐스팅을 답습하면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성’ 확보가 최우선인데, 이는 업계 내 유의미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을 때 가능하다. 새로운 재능이 업계에 유입될수록 신선한 기획들이 분위기를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 미국 그리고 가까운 일본과 달리 한국 영화계는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이창동 다음을 이어 갈 세대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영화 업계는, 더 나아가 정부는 어떤 일을 해야만 할까. 그간의 영화계를 돌아보고, 현재 신인 감독 육성을 위한 정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창작자 개인의 역량 문제는 아니다
<살인의 추억>(2003)은 봉준호 감독이 34세에, <공동경비구역 JSA>(2000)는 박찬욱 감독이 37세에, <타짜>(2006)는 최동훈 감독이 36세에, <추격자>(2008)는 나홍진 감독이 34세에 만든 영화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를 내놓았을 때 류승완 감독은 27세였다. 지금 기준으로 1990년대생들이 만든 영화인 것이다. <몸값>(2023)의 이충현 감독(1990년생), <남매의 여름밤>(2020)의 윤단비 감독(1990년생),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2)의 김세인 감독(1992년생), <애비규환>(2020)의 최하나 감독(1992년생) 등의 데뷔작이 호평받으며 차세대 유망주로 주목받고 있지만 선배 세대와 비교해보면, 아직 한국영화계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2003년 화제작 상영회 개최 포스터 (출처 : 스포츠한국)   
 
감독 개개인의 역량과 재능 문제는 아니다. 다만 콘텐츠 산업 전체에서 놓고 보면 젊은 창작자들에게 영화가 전만큼 매력적이지 않은 매체인 것처럼 보인다. 넷플릭스를 위시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등장하고 팬데믹은 소비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속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가장 타격 입은 산업 중 하나가 극장영화다. 대기업 수직계열화와 독과점으로 한국영화가 개성을 잃어가고 이 정도만 해도 괜찮다는 안일한 기획이 양산될 때 맞이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업계에 더욱 치명적이었다. 반면 드라마와 예능, 웹툰, 웹소설, 케이팝 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오히려 수혜를 입었다. 영화감독과 시리즈 감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만큼 장편 데뷔작으로 주목받은 신예들이 OTT 시리즈를 준비하거나 이미 연출작을 내놓은 사례도 많다. 창의적인 발상과 도전적인 기획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는 풍경은 영화계 바깥에서 훨씬 자주 목격된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영화의 성과와 달리, 현재 한국 영화계가 새로운 도전과 혁신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돌이켜 보면,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장화, 홍련>, <지구를 지켜라!>가 모두 개봉했던 2003년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고 불리지만 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를 극장 산업의 위기라고 단언하기에는 불과 5년 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모두 거머줬다. 그리고 한국영화계에서 <기생충>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이기에 가능한 특수성이 자리한다. “우리의 모든 영화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솔직한 의견을 전해줬던 한국 관객들에게 감사하다. 덕분에 우리가 안주하지 않을 수 있었고, 감독과 창작자들이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한국 관객 여러분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5년 전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받았을 때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한국 관객의 까다로운 안목이 <기생충>을 탄생시켰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는 공식 석상에서 인사치레로 흘러나올 법한 원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K-콘텐츠 산업의 본질이다.

K 콘텐츠 산업의 고유한 특징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소비자들이 모인 곳이다. 극장영화는 티켓값이 아깝지 않을 만큼 잘 만들면서 ‘평론가들만 좋아하는 예술영화’ 같지 않은 대중성을 담보해야 하고, 그렇다고 너무 오락성에 치중하면 넷플릭스에 풀릴 때 보면 족한 작품이 된다. 스토리에 치명적인 구멍이 있으면 아무리 미장센이 훌륭해도 밈이 되어 조롱받을 수 있으며 모든 배우가 연기를 잘해야 한다. 준수한 결과물을 내놓아도 감독의 전작보다 나은지, 주연 배우의 캐릭터가 전작을 떠올리게 하지는 않는지, 너무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이지는 않은지 가능한 모든 측면을 뜯어본다. 성수기 화제작의 경우 스크린독과점으로 작은 영화의 기회를 뺏지는 않았는지, 언론배급 시사회 후 평론가 반응은 어떤지, 개봉 당일 오전 CGV 에그지수는 어떤지 실시간으로 이슈가 전달된다. 
 


영화 <파묘>의 CGV 에그지수 (출처 : CGV)   
 
이렇게 까다로운 관객을 상대하는 한국영화 산업에 몸 담은 이들이 맷집을 키우고 진화를 거듭한 결과 장르영화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오스카 작품상을 모두 받고 한국에서만 천만 관객을 동원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기록을 세웠다. (해외에서는 칸국제영화제 주요 부문상을 받는 작품이 자국에서 <기생충>만큼 흥행하는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극장 산업뿐만이 아니다. 한국 드라마, 웹툰, 예능 프로그램, 케이팝 등 콘텐츠 산업의 종사자라면 누구나 소비자의 엄격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 분투한다. 이를테면 케이팝 아이돌은 어린 나이에 연습생으로 입사해 외모, 노래, 춤, 인성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평가되는 인재가 되기 위해 수년 간 고강도 트레이닝을 받는데 전 세계에 이런 나라가 없다. 이같은 산업 분위기가 과연 이상적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한국 시장의 압박적인 분위기는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웹소설, 웹툰, 게임, 케이팝 등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발판이 됐다. 그 결과 영화 바깥에서는 세대교체의 징후가 유의미하게 포착되고 있다. 20년 전 가장 유명한 드라마 PD가 <대장금>(2003)의 이병훈, <가을동화>(2000)의 윤석호, <내 이름은 김삼순>(2005)의 김윤철이었다면 지금은 <시그널>(2016)의 김원석, <빈센조>(2021)의 김희원, <슬기로운 의사생활>(2020)의 신원호 등의 이름이 거론된다. 10년 전 최고의 예능 PD는 김태호와 나영석이었고 여전히 영향력이 크지만, 다채로운 채널의 인기와 함께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이들조차 생존을 위해 유튜브에 띄어들고 있다. 3세대, 4세대, 5세대 그룹을 구분하는 케이팝 산업은 말할 것도 없다. 반면 영화계는 20년 전에도 봉준호, 박찬욱이었고 아직도 봉준호, 박찬욱이며 “차세대 봉준호, 박찬욱은 왜 안 나오냐”고 묻는다.

일본, 프랑스, 미국… 해외의 경우는 어떠한가
옆 나라 일본은 ‘일본영화 뉴 제너레이션’으로 묶을 만한 차세대 감독들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세대교체에 성공했다. 과거 일본영화계를 이끌었던 이름들이 1962년생 고레에다 히로카즈(Koreeda Hirokazu), 1964년생 아오야마 신지(Shinji Aoyama), 1955년생 구로사와 기요시(Kurosawa Kiyoshi), 1947년생 기타노 다케시(Kitano Takeshi) 감독이었다면 지금은 <드라이브 마이 카>(2021)의 하마구치 류스케(Hamaguchi Ryusuke, 1978년생), <새벽의 모든>(2024)의 미야케 쇼(Miyake Sho, 1984년생), <하모니움>(2016)의 후카다 코지(Fukada Koji, 1980년생), <나미비아의 사막>(2024)의 야마나카 요코(Yamanaka Yoko, 1997년생) 등이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는다. (이중 하마구치 류스케는 도쿄예술대학에서 구로사와 기요시에게 영화를 배운 제자이기도 하다.) 

적어도 일본 인디 영화계에서는 인디영화들이 계속 제작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다. 상업영화는 영화사, TV 방송국 등 콘텐츠 기업이 임의로 조합을 만들어 특정 작품에 공동 투자하는 제작위원회 방식으로 제작되어야 하고 바로 이 점이 그들이 도전적인 기획을 내놓지 못하는 한계로 지적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인디영화인들은 제작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개척해 왔다. 이를테면 하마구치 류스케는 도쿄예술대학 등의 워크숍을 통해 고유의 작업 방식과 미학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해피 아워>(2021)는 일반인 대상의 연기 워크숍 수강료로 제작비를 마련해 완성한 영화다. 일본의 커뮤니티 시네마, 미니 극장 문화는 저예산 인디 영화가 입소문을 탈 수 있는 시작점이 된다. 또한 일본영화계는 서양 감독들이 구로사와 아키라에게 존경을 표하던 시절부터 해외 영화제나 세일즈사와 긴밀한 네트워크를 만들어왔다. 일본 내에서 화제가 된 작품은 해외 세일즈 사나 배급사, 해외 영화제와 인연을 맺어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때문에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2019), 미야케 쇼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3), 후카다 고지의 <러브 라이프>(2023)처럼 프랑스 자본의 투자를 받은 일본어 영화가 제작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CNC(국립영화센터)에서 신인 감독의 첫 번째, 두 번째 장편영화를 따로 심사하는 위원회를 두고 있다. 수익 선지원(Avance sur recettes) 시스템은 감독이 영화를 찍기 전에 일정 금액을 지원하고, 추후 흥행 수익이 나면 그 일부를 다시 CNC에 돌려준다.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누벨바그 시대부터 신인 감독들이 투자를 받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지금은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1980년대부터 미국의 선댄스 연구소는 시나리오 랩(Lap)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신인 감독 멘토링, 제작비 지원을 해오고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폴 토마스 앤더슨, 데이미언 셔젤 등의 감독이 이곳을 거쳤다. 


(왼쪽부터) 프랑스 CNC, 미국 Sundace Institute (출처 : CNC, SUNDANCE 웹사이트)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먼저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이나 개봉지원 사업이 있다. 한국 독립예술영화계는 옆나라 일본처럼 제작, 투자, 배급, 상영의 선순환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난해 예산 114억 원에서 올해 67억 원으로 예산이 삭감돼 정부 지원금으로 제작비의 일부를 충당해 영화를 만드는 일도 어려운 실정이다. 

한때 영화학교의 지원을 받아 졸업영화로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사례들도 있었지만(이를테면 한국영화아카데미의 <파수꾼>과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의 <남매의 여름밤>) 지도교수가 존재하는 시스템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의 창작・제작 지원 규모는 물론 서울독립영화제를 포함한 국내 영화제 예산 지원 역시 큰 폭으로 삭감됐다. 신인 감독들에게 영화제는 자신들의 작품을 산업 관계자와 영화팬들에게 소개하고 향후 개봉 기회를 얻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행사다. 류승완, 나홍진, 장재현 등 많은 감독들의 신작이 국내 영화제에서 화제가 됐던 점을 고려하면 영화제 자체의 위축은 영화 산업을 계속 ‘고이게’ 만들 수밖에 없다. 

제작비 지원만이 정답은 아니다
한편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이창동, 나홍진, 류승완 감독 등이 해외 영화제에 부지런히 초청받던 시절과 달리 요즘은 칸, 베니스, 베를린 등 3대 영화제 주요 부문에 신인 감독 작품이 상영되는 경우가 드물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한국에도 <벌새>(2019)의 김보라(1981년생), <메기>(2019)의 이옥섭(1987년생), <다음 소희>(2023)의 정주리(1980년생), <괴인>(2023)의 이정홍(1985년생), <춘천, 춘천>(2018)의 장우진(1985년생) 등 뛰어난 신예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독립예술영화계는 하마구치 류스케나 후쿠다 쇼지 등을 해외 영화제에 알린 일본만큼 끈끈한 네트워크가 없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김보라 감독 (출처 : 뉴시스), 이옥섭 감독 (출처 : 엣나인필름)
정주리 감독 (출처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이정홍 감독 (출처 : 씨네21), 장우진 감독 (출처 : 씨네21)  
 
그리고 서구 중심의 영화제에서 냉정하게 ‘아시아 영화’는 일정 편수 이상을 상영하면 나름의 다양성을 확보했다고 자평하고 그들끼리 자축하는 비주류에 속한다. 최근 해외 영화제는 한국 영화계의 뉴페이스를 조명하던 시대를 지나 인도나 베트남의 신인 감독을 주목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영화에 열린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상업영화의 경우에는 좀 더 문제가 복잡하다. <파묘>(2024)의 장재현(1981년생),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의 변성현(1980년생),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020)의 김용훈(1981년생),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의 엄태화(1981년생), <파일럿>(2024)의 김한결(1985년생), <돈>(2019)의 박누리(1981년생) 등을 주목해 볼만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OTT 플랫폼에서 영화나 시리즈 연출을 했거나 준비 중이다. 장편 독립영화로 주목받은 신인 감독들 대다수는 상업영화 제작사와 계약한 뒤 장편영화 준비에 들어갔는데, 실제 결과물이 아직 나오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여기엔 신인 감독과 베테랑 제작자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신인 감독의 재능을 알아본 제작자는 그의 고유한 창의성을 존중하되 상업영화판의 생리와 필요한 타협을 설득하며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들의 역학관계와 의견 조율이 투자와 캐스팅까지 이어지는 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데, 충무로는 늘 프로듀서 직군의 힘이 약한 점이 지적되어 왔다. 2003년 <고양이를 부탁해>, <장화, 홍련>을 제작한 오기민이나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살인의 추억>의 가능성을 알아본 차승재와 같은 용기있는 제작자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약 6,000억 원 규모의 K-콘텐츠 펀드를 조성하며 이중 796억 원을 영화계정으로 분류했다. 영화계정은 메인투자, 중저예산 영화, 애니메이션 등 3가지의 펀드로 나뉜다. 메인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영화제작사가 반드시 지식재산권을 보유해야 하는데, 이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의 투자를 받아 IP를 플랫폼에 넘기는 요즘 추세와 달리, 국내 제작사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영화 산업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균형 잡긴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순제작비 20억 원 이상에서 80억 원 미만의 중저예산 영화 제작 지원 사업을 추진한다. 이른바 ‘허리급’ 영화가 관객 수 200~300만 명 정도로 흥행하며 산업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영화계 역시 살아날 수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투자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지원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재능 있는 창작자들에게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하느냐다. 

민규동 한국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는 “제작비만 주는 것이 아니라 기획, 제작, 배급까지 신인 감독들이 계속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K-콘텐츠 펀드는 신인 감독이 경력 감독과 경쟁해야 하는 구조다. 프랑스처럼 ‘첫 번째, 두 번째’ 영화만을 위한 전용 펀드를 만들고 심사도 별도로 진행한 뒤 영화가 완성될 때까지 책임지는 구조 필요하다. 신인 감독 영화 전용 상영 기획과 같은 기회를 만들어 그들에게 충분한 배급 기회가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는 등 불공정 계약을 방지하고 창작자가 작품에 대한 권리를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신인들에게 직접 기회를 주는 펀드, 멘토링, 배급 지원 세 가지가 핵심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영화 지원 역시 이같은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언제나 그랬듯 좋은 창작자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진정한 한국영화계의 세대교체는 이들의 재능이 꽃필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기반이 갖춰진 이후에 가능할 것이다. 

 



 


 

Stock Inside
2025년 1~2월 엔터산업 주가 분석
 
임수진 대신증권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

엔터산업의 주가는 합산 시가총액 기준 +31%로 1~2월에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며 시장 대비 크게 아웃퍼폼(Outperform) 했다. 엔터 산업의 비수기인 연초에도 강세를 보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1) 한한령 해제 기대감이 확대되었으며, 2) 美 관세 전쟁에서 자유로운 산업적 특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2024년, 올해의 엔터 산업 전망에 대해 ‘빅사이클’이라 표현했는데 더욱 우호적인 환경으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발표된 4분기 실적 내용을 살펴보면 공연과 MD 매출 호조로 양호한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의 핵심 키워드인 공연과 MD 부문의 성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로 볼 수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주가가 쉬지 않고 상승한 여파로 3월은 투자자의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한령 해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만큼 단기적으로 변동성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2025년과 2026년 실적 추정치를 함께 본다면 여전히 저평가 구간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BTS, 블랙핑크 완전체 컴백에 대한 실적 업사이드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으며, 올해에는 아티스트 전반적으로 시장 기대치를 상회하는 공연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어 추가 업사이드도 존재한다.

I. 2025년 1~2월 업종별 주가분석
1. 엔터테인먼트
1) 엔터 산업, 더욱 우호적인 환경으로 변화
1~2월 엔터 산업의 합산 시가총액은 +31% 증가했다. 기업별로는 YG엔터테인먼트 +38%, 하이브 +33%, 에스엠 +33%, JYP Ent. 21%, 디어유 +19%, 큐브엔터 +6% 순이다.

올해의 엔터 산업은 연초부터 강력했다. 통상 엔터 산업의 연초는 비수기로 모멘텀이 부재한 시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세를 보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1) 한한령 해제 기대감이 확대되었으며, 2) 美 관세 전쟁에서 자유로운 산업적 특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강도 높은 관세 정책으로 고물가 및 고금리, 더 나아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확대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높은 환율이 유지될 수 밖에 없고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국내 엔터사의 경우 환차익을 기대해 볼 수 있어 반사수혜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중국의 한한령 해제 가능성이 부각된 영향도 크다. 2월 초 우원식 국회의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한한령’ 해제에 필요성을 강조했고 시 주석은 한중 문화교류 확대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기대감은 어느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필자는 지난해 자료를 통해 올해의 엔터 산업 전망에 대해 ‘빅사이클’이라 표현했는데 더욱 우호적인 환경으로 변화한 것이다.  



2) 중국 한한령 해제 이번에는 기대해봐도 될까?
한한령은 2016년 한국의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이 한국 문화 콘텐츠 등을 제한한 조치이다. 한국 연예인 및 콘텐츠의 중국 내 방송과 출연이 제한되었으며 중국 콘서트도 2016년도 이후 8년동안 열리지 못했다. 한한령이 없었다면 국내 엔터사가 적극적으로 서구권 시장 진출에 집중했을까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시장이기도 하다. 중국은 3천석 이상 규모의 공연장 콘서트 횟수가 전년 대비 3배 증가하는 등 공연 시장 자체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4년 상반기 개최된 상업성 공연의 누적 관객수는 약 8천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했는데 동기간 국내 공연 시장의 약 1천만명 기록과 비교하면 규모에서 8배 이상 차이가 난다. 참고로 공연 선진국인 일본은 반기 2 천 4백만명 수준이다.

중국공연업협회(中国演出行业协会)가 발표한 2024년 중국 공연시장 발전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공연을 관광객 유치를 위한 문화관광 홍보의 주요 수단으로 보고 있으며, 중국 시장의 내수 소비를 진작할 목적으로 콘서트장 인프라 확충 및 정책 도입을 통해 ‘콘서트 경제’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24년 7월부터는 외국인 투자 공연매니지먼트 회사 설립과 외국 가수의 중국 내 콘서트 개최 승인 권한을 성ㆍ시급 문화 관련 부처에 부여함으로써 중국 내 공연 개최의 문턱을 낮췄다. 또한, 지난해 가장 많은 공연 회차를 기록한 상하이의 경우 대형 콘서트에 최대 200만 위안을 지원하고 해외 관객 비율이 10% 초과하면 300만 위안의 일회성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홍콩에는 올해 5만명 수용 가능한 공연장 ‘KAI TAK SPORTS PARK’가 완공되는 등 대형 공연장도 크게 늘어날 예정이다.

중국 정부가 바라는 ‘콘서트 경제’를 통한 내수 소비와 외국인 관광객을 늘리기 위해서는 중국 C-POP 아티스트만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K-POP 아티스트는 중국 팬덤이 크고 인지도가 높다. 반면 국내 공연장은 규모가 적어 대형 공연장에 대한 수요가 크기 때문에 중국 공연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월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문화교류 확대에 긍정적인 입장과 3월 중국 문화사절단 방문을 시작으로 한한령 해제 시기가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이라는 언론 보도 내용은 한한령 해제에 대해 기대감을 갖게 하는데 충분했다.

물론 그동안 한한령 해제 가능성은 수차례 언급된 적이 있으나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전히 불확실성이 높다. 다만, 중국 시장의 문이 다시 열린다고 가정한다면 북미, 유럽 시장 개척과는 비교도 안되는 성장세를 기록할 전망이다. 케이팝에 대한 니즈가 어느 지역보다 큰 국가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케이팝에 대한 애정은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현재 매출의 약 30~40%를 자치하고 있을 정도이다. 또한, 중국은 아레나급부터 돔급, 스타디움급까지 다양한 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국내 아이돌이 일본에서 공연을 많이 하는 이유는 국내 및 동남아의 경우 공연장 규모가 제한적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한한령이 해제된다면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 내에서의 공연 규모를 큰 폭으로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중국에서 가장 큰 공연 규모를 기록했던 빅뱅은 55만명을 모객했다. 글로벌 인지도 및 중국 소비자 소비 수준 성장을 고려했을 때, 보수적으로 보더라도 BTS, 블랙핑크 등 탑티어 아티스트는 최소 50만명 이상의 모객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로 중국 주걸륜과 같은 유명 아티스트는 중국에서만 200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다.

시장 개화 초기에는 중국 팬덤 비중이 높은 에스엠이 가장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결국 현지 활동을 통해 새로운 팬덤층 유입도 클 것이기 때문에 IP숫자가 많은 하이브가 중장기적으로 가장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3) 4Q24 Review: 공연과 MD 서프라이즈 행진
엔터 산업의 4분기 실적이 발표됐다. 시장의 관심도가 가장 높은 영업이익은 에스엠, YG가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고, 하이브와 JYP는 아쉽게도 기대치를 하회했다. 주목할 점은 엔터 4사가 공통적으로 공연과 MD 매출 호조로 인해 매출액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올해부터 공연과 MD 중심의 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더욱 긍정적인 메시지가 담겼다고 평가된다.

MD 부문의 서프라이즈 배경은 응원봉 이외 MD의 판매량 확대이다. 기존에는 공연에서 판매하는 MD 비중이 높았는데 이중에서도 마진율이 높았던 응원봉의 판매량이 절대적으로 높았다. 이외 굿즈의 경우 종류도, 판매 물량도 팬덤의 수요에 미치지 못했다. 팝업스토어와 공연 MD의 경우 조기 품절되는 경우가 많아 웃돈을 주고 사고파는 현상까지 빈번히 나타났다. 다행히 최근 엔터사들의 MD 전략은 팬덤 수요에 맞춰가는 모습이다. 상품을 다양화하고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자는 기조로 변화했다. 특히 팝업스토어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 지역 확장하고 있다. 기존 일본 정도에 그쳤던 팝업스토어는 중국, 동남아시아 그리고 서구권까지 지역을 크게 확대했다.

기획 MD의 경우 응원봉과 비교했을 때 품목당 제작 수량이 적고 해외 MD의 경우 추가 운송비나 현지 생산으로 마진율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팝업스토어의 경우 인테리어 비용이 크다. 최근 매출 서프라이즈 대비 영업이익 개선세가 저조한 이유이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해져 점진적으로 이익률이 개선돼 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올해부터는 큰 폭의 공연 모객수 성장이 예상되어 월드투어가 몰려있는 하반기 이익률 개선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브의 4분기 매출액 7,253억 원(YoY +19.2%, QoQ +37.4%)[1], 영업이익 653억 원(YoY -26.7%, QoQ +20.6%)을 기록했다. 공연 및 MD 매출액 호조로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했지만 아쉽게도 아티스트 활동 증가 및 법무비용, 주식 보상 비용 발생에 따른 판관비 증가로 이익 측면에서는 아쉬웠다. 다만, 올해의 핵심 키워드인 공연과 MD의 유의미한 성장을 확인할 수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미국에서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통해 티켓 가격이 결정되는 가운데, 세븐틴의 10회 공연은 서구권에서의 인기를 입증하는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올해 세븐틴은 더욱 큰 규모의 공연장에서 월드투어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1] YoY는 전년대비(Year on Year), QoQ는 전분기대비(Quarter on Quarter)를 뜻한다.  



 
SM은 4분기 매출액 2,738억 원(YoY +9.0%, QoQ +13.0%), 영업이익 339억 원(YoY +275.6%, QoQ +154.3%)으로 컨센서스를 크게 상회한 서프라이즈 실적을 기록했다. 실적 호조는 콘서트 및 팝업스토어 등 기획 MD 품목 확대 전략의 결과이다. 기존에는 아티스트 그룹 단위의 상품이었던 시즌 그리팅은 멤버 단위로 상품 수가 늘어났으며 기획 MD는 콜라보를 진행하며 단가가 높아졌다. SM은 올해 이러한 MD 전략을 더욱 확장시킬 계획인데 1분기 진행한 SM타운 30주년 행사 굿즈가 이를 증명한다. MP3 굿즈가 특히 화제였는데 예약판매 구조로 진행되어 2분기 실적 서프라이즈가 예상된다.
 

 
JYP와 YG의 경우 아직 실적 세부내용이 발표 이전이나, MD 중심의 서프라이즈에 따른 실적 호조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JYP는 매출액 1,991억 원(QoQ +16.8%, YoY +26.8%), 영업이익 369억 원(QoQ -23.7%, YoY -2.6%)으로 시장 기대치를 소폭 하회했다. 4분기 반영된 오디션 프로그램 <더 딴따라> 관련 비용 및 판관비 증가로 OPM 예상치 하회한 것으로 예상한다. YG는 신인 걸그룹 베이비몬스터의 본격적인 수익 기여가 나타나며 매출액 1,041억 원(QoQ +24.6%, YoY -4.8%), 영업이익 11억 원(QoQ 흑전, YoY +176%)을 기록했다.

4) 엔터산업 여전히 저평가 구간
최근 5개월 주가 수익률을 살펴보면 하이브 +53%, 에스엠 +50%, JYP +67%, YG +69%로 지난해 10월부터 주가가 쉬지 않고 상승세를 기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엔터산업은 여전히 저평가 구간으로 보이는데, 올해의 핵심 키워드인 공연과 MD 부문의 성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이브의 2025년 예상 매출액은 2.7조 원, 영업이익은 3,400억 원이며, 2026년 예상 매출액은 3.5조원, 영업이익 4,800억 원으로 컨센서스가 형성됐다. 하지만 실적 추정치에는 BTS만 보더라도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최근 블랙핑크의 월드투어 일정이 공개되었는데 회당 모객수 5.5만명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를 참고하면 하이브의 BTS도 최소 5만명 이상 모객이 가능한 스타디움급을 중심으로 월드투어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보수적인 추정으로 회당 모객수 5만명, 70회를 가정 시 350만명의 모객이 가능한데 BTS 슈가가 가장 최근 진행한 월드투어의 티켓 단가 23만원으로 계산하면 총매출액 기준 8천억 원 이상의 매출이 2026년도 추가될 전망이다. 여기서 MD 매출도 추가되는데 BTS의 경우 7년만의 공연이다보니 응원봉 판매량도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상 MD 매출액은 6천억 원으로 총 1.4조 원의 매출이 발생할 전망이다. BTS의 완전체 컴백만 보더라도 시장 컨센서스가 실적 성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세븐틴, TXT, 엔하이픈의 공연 회당 모객수는 현재 2~3만명대인데 4만명대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대부분의 월드투어 일정이 발표 전이다 보니 실적에 반영 안되었으나 각 그룹별로 30% 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2025년에는 보넥도, 르세라핌, 2026년에는 아일릿, 투어스의 월드투어가 새롭게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실적을 충분히 반영할 경우 PER 20배를 하회한다. 하이브의 과거 평균 PER 40~50배, 업종 평균 PER 25배와 비교했을 때 저평가된 수준인 것이다.  

YG도 마찬가지다. 블랙핑크는 지난해부터 솔로 활동을 이어왔으며, 로제의 도 큰 인기를 끌었고 지수, 리사, 제니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음원 지표가 좋아 이번 월드투어에 대해 더 큰 베뉴와 높은 게런티를 제시할 근거가 생긴 것이다.

현재까지 발표된 공연일정은 약 한달 반의 일정으로 아직까지는 불확실성이 있어 추정치에 일부 반영된 모습이다. 시장 컨센서스는 180~200만명의 모객을 예상하고 있으나 회당 모객수 5만회 유지 및 과거 68회 대비 감소한 50회를 가정하더라도 250만 모객이 가능할 전망이다.

여기에서 베이비몬스터, 트레저의 월드투어와 신보 발매까지 이어진다면 업사이드가 크게 발생할 것이다. 최근 신인 걸그룹 베이비몬스터의 2025년 월드투어 일정이 발표되었는데 43만 명으로 시장 기대치를 크게 상회했다. 첫번째 월드투어라는 점에서 향후 성장성이 기대되는데 2026년에는 더욱 확장된 규모가 기대된다.  



 


Stock Inside
2025년 1~2월 미디어산업 주가 분석
3년만에 찾아온 봄
 
김희재 대신증권 미디어 산업 연구위원

미디어 산업의 1~2월 주가는 확실한 회복세를 보였다. 주요 8개 종목들의 주가는 +0.2% ~ +28%로 전종목이 모두 상승했다. 동기간 코스피가 +6%, 코스닥이 +10% 상승했고, 미디어 산업 8개 종목 중 5개 종목이 시장대비 아웃퍼폼했다. 미디어 산업 주가 회복의 동력은 TV광고 회복, 넷플릭스의 호실적 및 투자 확대, 주요 대작에 대한 기대감, 한한령 해제 가능성 등이다.

‘22년말부터 제기된 금리인상 시그널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로 TV광고가 급락하면서, 미디어 산업의 주가는 23~24년 -74% ~ -36%의 하락을 겪었다. 동기간 코스피 +7%, 코스닥 -0.2%를 감안하면 매우 큰 폭의 하락이다.

‘24년 하반기 금리 인하를 시작으로 TV광고의 하락이 멈추면서 미디어 산업의 주가는 9~10월 저점에서 반등을 시도한 후, 11~12월 반등폭 확대, ‘25년 1~2월에는 완연한 회복세에 진입했다. 2월말 기준 주가는 ‘22년말 대비 여전히 -72% ~ -36%로 부진하지만, 미디어 산업을 둘러싼 주변환경과 산업의 자체 경쟁력에 기반하여 상승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1. 2025년 1~2월 업종별 주가 분석
1~2월 콘텐츠 기업들의 주가 수익률은 +0.2% ~ +28% 수준이다. 기업별로는 팬엔터테인먼트 +28%, 에이스토리 +21%, 스튜디오드래곤 +19%, 콘텐트리중앙 +18%, CJ ENM +13%, NEW +5%, 삼화네트웍스 +2%, SBS +0.2% 순이다. 동기간 코스피는 +6%, 코스닥은 +10% 상승했다. 주요 콘텐츠 기업들 8개 중 5개의 주가가 시장을 아웃퍼폼했다.

팬엔터테인먼트의 +28% 상승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인 <폭싹 속았수다>의 3월 7일 공개가 확정된 것에 기인한다. 이 작품은 믿고 보는 감독, 작가, 배우들의 작품으로, '22년 8월, 제작이 확정된 시점부터 화제를 불러왔다. 김원석 감독은 tvN의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 <아스달 연대기> 등 tvN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감독이다. 임상춘 작가는 KBS2 <쌈, 마이웨이>, <동백꽃 필 무렵>을 통해 최고 시청률 각각 13.8%와 23.8%을 기록해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폭삭 속았수다>의 주연 배우는 아이유와 박보검으로 역시 흥행 보증수표로 인식되는 배우들이다.

기업의 주가를 움직이는 요인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콘텐츠 기업들의 주가는 주요 작품의 시청률 또는 인지도가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TV에 우선적으로 방영되는 작품의 수익구조는, 앞뒤 광고와 중간광고 등 광고 수익이 작품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충당하고, PPL(간접 및 협찬광고)로 나머지 제작비를 충당한 후, 판권 판매(작품 종영 후 VOD 또는 해외 판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를 통해 이익을 내는 구조이다.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광고는 시청률이 높을수록 판매율이 증가하고 할증이 붙으며, 시청률이 높은 작품은 판권 판매 가격 역시 증가하기 때문에, 시청률이 작품 수익에 결정적인 역할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시청률은 매일 공개되기 때문에, 시청률의 수준과 추이에 따라 주가가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폭싹 속았수다>는 TV에 판매된 작품이 아니고 글로벌 OTT인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 작품이다. 이런 경우 넷플릭스가 제작비에 더해 일정수준의 마진을 보장해주고 작품을 구입한다. 따라서, 작품이 공급된 시점에 이미 이익이 확정되어 제작사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적은 구조이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플릭스패트롤(Flixpatrol) 순위 등 OTT 작품들의 글로벌 반응에 따라서 일시적으로 주가가 움직이는 경향은 있다. 다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작품의 제작비는 약 600억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정도 규모는 한국에서 제작된 작품들 중 최고 수준이며, 넷플릭스가 마진을 보장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제작사가 인식하는 이익 규모도 상당히 클 것으로 전망된다.

에이스토리, 스튜디오드래곤, 콘텐트리중앙, CJ ENM은 한한령 해제 기대감에 따라 +13~21% 상승했다. 특히, 한한령 해제 가능성이 보도된 직후인 2월 20일 기준, 에이스토리 +30%, 콘텐트리중앙 +25%, 스튜디오드래곤 +18%, NEW +16%, CJ ENM +8% 등 대부분의 콘텐츠 기업들이 상승했다.

에이스토리는 2022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ENA라는 메이저가 아닌 채널에서 방영했음에도 불구하고 17.5%의 매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매체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제작사이지만, 연간 2~4편 정도 꾸준히 작품을 제작 중이다. tvN <시그널>, <지리산>(2021),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2019-2021) 시리즈, ENA <유괴의 날>(2023), <모래에도 꽃이 핀다>(2023) 등 ‘06년 이후 누적 약 40편 정도의 작품을 제작했기 때문에, 한한령 해제 시 중국향 작품 제작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상승했다.

스튜디오드래곤과 콘텐트리중앙은 각각 tvN(CJ ENM)과 JTBC의 인하우스 제작사이면서 넷플릭스, 디즈니+, 지상파 등 다양한 매체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한국의 1, 2위 규모의 제작사로서 한한령 해제 시 가장 먼저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기업들이기에 역시 높은 주가 상승률을 보였다. 지난 ‘22~23년 중국 OTT에 정식으로 18편의 콘텐츠가 판매됐는데, 이 작품들은 모두 tvN-스튜디오드래곤, JTBC-콘텐트리중앙, SBS-스튜디오S 등 한국을 대표하는 3대 플랫폼과 3대 제작사의 작품들이었다.

SBS 역시 한한령 해제 시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기업이지만, 2월 20일 주가는 +0.9% 상승에 불과했고, 1~2월 주가도 주요 8개 기업들 중 가장 낮은 +0.2% 상승에 그쳤다. 그 이유는 넷플릭스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에 따라 이미 11~12월에 +42%의 높은 주가 상승률을 보인 것에 따른 부담이다. 주요 8개 기업들의 주가는 ‘23년 -47% ~ -15%의 하락을 보였는데, SBS가 -15%로 하락폭이 가장 작았다. 주요 8개 기업들의 ‘24년 주가 역시 -53% ~ -16%의 하락을 보였는데, SBS는 11~12월 +42% 상승에 힘입어 ’24년 -24%로 8개 기업들 중 두 번째로 낮은 하락을 보였다. 이렇게 SBS는 지난 2년간 콘텐츠 기업들의 주가 하락기에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작았고, 24년말부터 급격한 상승세로 전환했기 때문에 이번 한한령 해제 기대에 따른 콘텐츠 기업들의 주가 상승에서 배제되었지만, SBS 역시 중국 시장 재개방 시 큰 수혜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상승 추세는 유효하다는 판단이다.

CJ ENM은 1~2월 +13% 상승했고, 2월 20일 +8% 상승했다. ENM의 대표 채널인 tvN의 작품들은 대부분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하고, 일부 ENM의 자체 스튜디오인 CJ ENM Studios가 제작한다. 그리고, 이들 작품들은 모두 ENM이 유통을 담당한다.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한 작품의 IP(판권)는 스튜디오드래곤이 보유하고 있지만, ENM이 유통을 담당하면서 일정수준의 수수료를 인식하기 때문에, ENM 역시 한한령 해제 시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ENM은 자체 OTT인 티빙을 통해 프로야구를 독점 중계하고 있다. 가을에 프로야구 시즌이 종료되면서 가입자의 일시적인 이탈이 주가에 부담으로 작용했지만, 3월부터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시작되면서 티빙 가입자가 재유입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형성된 것도 ENM의 1~2월 주가 상승의 요인이다.  

2. 2025년 1~2월 미디어 산업의 주가에 대한 의견
‘23년 이후 부진했던 미디어 산업의 주가가 반등을 시작한 것은 ‘24년 11~12월부터다. 부진했던 TV광고가 3Q24 실적(24.10월말~11월초 공개) 시즌부터 저점을 형성한 것으로 파악되면서 주가 반등이 시작됐다. ENM의 TV광고 매출을 보면, 1Q23 -35% yoy, 2Q23 -26% 등 ‘23년에만 -28% yoy 감소했다. 이는 팬데믹 초기인 1Q20 -29% yoy와 2Q20 -31% yoy를 넘어서는 수준의 하락이다. ‘24년에도 ENM의 TV광고 매출은 하락했지만, 3Q24 -1.5% yoy로 하락폭을 크게 줄였고, ‘25년 2월에 공개된 4Q24 실적에서는 TV광고 매출이 +16.6% yoy의 깜짝 실적을 달성했다. 아직 TV광고 시장이 본격적으로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ENM의 경우 4Q24에 방영된 <정년이>가 최고 시청률 16.5%로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광고 매출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25년 1~2월 들어 미디어 산업의 주가 상승폭이 커진 첫 번째 요인이 TV광고의 저점 확인 및 일부 상승 전환이라면, 두 번째 요인은 넷플릭스의 실적이다.

‘25년 1월에 공개된 넷플릭스의 4Q24 실적은 가히 고무적이라고 볼 수 있다. 누적 가입자는 사상 처음으로 3억 명을 돌파했고, 4Q24 순증은 1.9천만 명으로 순증 기준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24년 매출 $39bn(+16% yoy), 영업이익 $10bn(+50% yoy), 영업이익률 26.7%(+6.1%p yoy), 당기순이익 $8.7bn(+22% yoy) 등 주요 지표들이 모두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넷플릭스의 실적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한국 콘텐츠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이다.

순증 가입자 1.9천만 명 중 아시아 가입자가 4.9백만 명이고, 가입자 증가율은 전체 가입자 +16% yoy, 아시아 가입자 +26% yoy로 아시아 가입자의 증가율이 전체 가입자 증가율을 크게 상회한다. 아시아 시장은 넷플릭스에게는 블루오션이고 글로벌 가입자 대비 꾸준히 2~3배 수준의 증가율을 보여왔다. 그리고 그 증가의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한국 콘텐츠이다. 이번 4Q24 실적에서도 넷플릭스는 호실적 원인들 중 하나로 <오징어 게임> 시즌2의 흥행을 언급했다. 한국 콘텐츠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어서, 넷플릭스는 매분기 실적 발표 때마다 거의 대부분 한국 콘텐츠에 대한 감사의 의견을 표시하고 있다.

‘21년 9월에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1은 1주차에 63백만의 시청 시간 달성 후 3주차에는 572백만 시간까지 상승했다. ‘24년 12월에 공개한 <오징어 게임> 시즌2는 공개 1주차 488백만, 2주차 417백만, 3주차 188백만으로 시즌1 보다 주간 최고 시청 시간은 적지만, 3주 누적 기준으로는 시즌1이 1,084백만, 시즌2가 1,093백만시간으로 시즌2의 누적 시청 시간이 시즌1을 상회했다. 특히, 시즌2의 경우 공개 직후 국내외 다수의 언론에서 시즌1 대비 호평받지 못한 것에 비해 양호한 성과를 달성했고, 시즌2 공개로 인해 시즌1의 ‘역주행’까지 나타나면서, 시즌2 공개 2주차인 12월 23일 주간에는 시즌1과 시즌2 합산 555백만의 시청 시간을 달성했다.

넷플릿스의 실적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콘텐츠의 투자 확대이다. 넷플릭스의 연간 투자금액은 ‘21년 $17.7bn(+50% yoy)로 역대 최고를 달성했으나, ‘22년 $16.8bn(-5% yoy), ‘23년 $12.5bn(-25% yoy)으로 2년 연속 투자 규모가 감소하면서 한국 콘텐츠의 넷플릭스발 효과도 사라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22~23년 투자 감소는 미국에서 발생한 할리우드 작가 파업 및 이에 동조하는 배우와 감독들의 동반 파업으로 인해 시장이 위축된 영향이었고, ‘23년 파업 종료 후 24년 넷플릭스의 투자는 $16.2bn(+29% yoy)으로 역대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다. 넷플릭스의 가입자 증가 및 투자 확대, 특히 한국 콘텐츠에 대한 집중 투자로 아시아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전략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25년 1~2월 미디어 산업의 주가 상승폭이 커진 세 번째 요인은 한한령 해제에 대한 기대감이다. ‘24년말부터 G20에서의 한중 정상회담, 문체부 장관의 중국 방문, 국회의장의 시진핑 주석 미팅 및 ‘25년 10월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 회담의 방한 가능성, 중국 문화사절단의 방한 예정,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미키17>의 중국 개봉 등 그 어느때보다 한한령 해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지난 ‘22~23년 한국 콘텐츠 18편이 중국 OTT에 정식으로 판매된 것도 중국 시장 재개방 관련 기대감을 높이는 근거이다. 다만, 중국과 관련한 사항들은 확정될 때까지는 여전히 불확실성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하기 때문에, 중국 시장 재개방을 관련 기업들의 실적 추정에 선반영하거나 주가에 지나치게 반영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중국이 아니어도, TV광고 저점 확인 및 반등 가능성, 콘텐츠 제작 물량 증가와 리쿱율(제작비 대비 판매율) 상승 등 콘텐츠 기업들의 주가 상승 요인은 충분하다.  




 


소셜미디어 빅데이터 활용 한류 트렌드 브리핑1)  
임동현 세종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1) 이 글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AI 활용 빅데이터 대시보드’를 활용해 작성됐음을 밝힙니다.
https://www.kwavebigdata.kr

1. 해외 케이팝 팬의 수용 양상에서 연예기획사 이슈
케이팝 산업의 특징 중 하나는, 팬덤이 순전한 소비자-수용자 집단을 넘어 아티스트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에 대해 적극적인 행동주의를 보이며, 연예기획사에 의견을 개진하고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의 한류 소셜미디어 데이터는 이러한 케이팝 시장의 양상을 단순히 기업과 고객 간 피드백 이상의 리스크로 바라볼 필요성을 보여준다. 최근 1년간 하이브의 키워드 언급 빈도는 3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소셜미디어 빅데이터 키워드 언급 빈도에서 부동의 1위를 유지하는 BTS뿐만 아니라 많은 아티스트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하이브가 연예기획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키워드 언급 빈도 순위에 등장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그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트렌드 감성 분석 내 ‘하이브(Hybe)’ 키워드 긍/부정 변화 추이

최근 3개월간 하이브 키워드의 긍/부정 감성 분석을 살펴보면 지속적으로 부정 감성이 긍정 감성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뉴진스와의 분쟁 사태가 다소 소강 상태에 들어선 이후 부정적 감성이 비교적 줄어든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2월 초 뉴진스가 그룹명을 NJZ로 변경할 것을 발표하면서 하이브에 대한 부정 감성이 다시 증가했다. 실제로 국내의 뉴진스 팬들은 X(구 트위터)와 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어도어와 하이브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비판하고 있는데, 해외 팬들 역시 이에 큰 관심을 보이며 동참하고 있다.

연예기획사에 대한 이러한 팬들의 관심은 최근 여자친구가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로 재결합한 데 대한 팬 여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하이브의 산하 레이블 쏘스뮤직은 걸그룹 여자친구와의 갑작스러운 전속계약 종료 발표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계약 종료 과정과 이후 상표권 등의 후속 조치를 둘러싸고 하이브와 쏘스뮤직은 팬들의 큰 반감을 샀다. 그 가운데 최근 여자친구의 재결합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일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2025년 1월 기준, 여자친구의 영문 팀명인 GFRIEND의 온톨로지 분석에서는 하이브가 연관 키워드로 나타나고 있는데, 모든 연관 키워드 중 가장 부정적인 의미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여자친구(gfriend)’의 온톨로지 분석

원문 분석을 살펴보면 팬들의 수용 양상을 더 면밀히 이해할 수 있다. 빅데이터 대시보드에서 수집된 한 게시글은 “트와이스가 갑자기 해체한다면 충격이긴 하겠지만, 이젠 웬만해서는 어떤 그룹의 해체나 멤버 이탈도 놀랍지 않을 거다. 여자친구의 해체를 겪은 이후로는 더 이상 충격받을 것도 없다.”라며, 과거 여자친구 전속계약 종료사건에서 일어난 팬덤의 신뢰 훼손 문제를 지적했다. 하이브와 뉴진스의 분쟁 사태에서 하이브가 대중의 부정적인 여론을 맞닥뜨린 것은 과거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축적되어 온 팬들의 반감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소셜미디어 빅데이터에서 나타나듯 해외의 케이팝 코어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아티스트의 활동을 한국 연예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이해를 추구하며 그 맥락 안에서 소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여자친구의 온톨로지 분석에서 나타나는 르세라핌의 높은 연결 강도도 그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몇몇 사건에서 야기된 연예기획사에 대한 반감은 다른 소속 아티스트에 대한 반감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케이팝 팬덤은 연예기획사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행동주의로 점점 나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EXO의 멤버 시우민의 출연 제한을 두고 KBS와 원헌드레드 사이에 불거진 갈등에서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지목된 SM엔터테인먼트 역시 이러한 팬들의 반감이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팬들의 이러한 수용 양상은 연예기획사는 아티스트의 브랜드를 관리하는 기업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하나의 브랜드로도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연예기획사 스스로의 이미지가 소속된 다양한 아티스트에게 미칠 리스크 역시 적극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2. 케이팝 스타 출신의 드라마, 영화 콘텐츠 캐스팅 효과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해외시장을 동시에 타겟팅하면서 글로벌한 인지도를 지니고 있는 케이팝 스타들의 캐스팅이 이뤄지고 있다. 한류를 이끄는 여러 장르 중 가장 빠르고 커다란 성장세를 보인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작품의 흥행과 인지도를 견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설강화>(2021)라는 작품으로 연기자로 데뷔한 바 있는 블랙핑크의 지수는, 올해 쿠팡플레이와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 공개된 <뉴토피아>가 화제를 모으면서 미디어(드라마, 영화) 분야의 키워드 언급 빈도에서 2위를 차지했다. 국내에서는 지수의 연기력에 대한 약간의 논란이 불거졌지만, 쿠팡플레이 콘텐츠 중에서 공개 첫날 역대 최다 시청을 기록했으며 해외 시청자를 대상으로 스트리밍하는 프라임 비디오에서는 글로벌 차트 5위, 총 39개국에서 TOP 10에 오르는 등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룹 빅뱅 출신 배우 탑(T.O.P)은 <오징어 게임> 시즌2에 캐스팅되면서 과거 음주운전과 약물 투약문제로 인한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탑의 온톨로지 분석에서는 해외 팬들 역시 해당 이슈를 상당한 수준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favorite, life 등의 키워드는 가장 강한 연결성과 긍정 감성을 나타낸다. 결과적으로 <오징어 게임> 시즌2는 탑의 과거 논란을 어느 정도 극복하면서 그를 활용한 화제성을 모으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탑(T.O.P)’의 온톨로지 분석

흥미로운 점은, 탑을 둘러싼 해외 팬들의 반응에서 이른바 '캔슬 컬처(Cancellation Culture)'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빅데이터 대시보드에 수집된 게시글 원문을 살펴보면 “왜 한국 네티즌들은 탑에게 그렇게 차갑게 구는 거야? 그냥 그를 내버려 두면 안 돼? 한국은 선진국인데, 여전히 낡은 사고방식과 편견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이 많아! 그는 네가 분노를 표출할 희생양이 아니야. 그도 너처럼 감정을 가진 인간이고, 삶의 고난을 겪어 왔어. 그런데 대체 무슨 권리로 누군가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지?”라는 의견에서 보듯, 일부 해외 팬들은 탑을 향한 한국 내의 비판적 시각을 지적한다. “다행히도, 수백만 명인 그의 글로벌 팬들이 그를 지지하며 기다리고 있어. 이번 복귀는 그를 비난하는 위선적인 한국 네티즌들에 대한 복수다. 넷플릭스와 <오징어 게임>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낸다.”라는 또 다른 게시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탑의 캐스팅은 한국과 다른 해외의 문화적 맥락에서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사례들은 케이팝 스타들의 글로벌 인지도가 드라마와 영화 산업에서 상업적으로 유의미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시사한다. 드라마와 영화 콘텐츠 제작자에게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출연은 콘텐츠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고려할만한 옵션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전략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성공은 단순히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인지도에 기댄 것이 아니며 연기력 논란과 배우의 논란은 작품에 불필요한 논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케이팝 아티스트의 해외 인지도뿐만 아니라 작품과 아티스트의 적합성 역시 면밀히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현상의 긍정적인 면과 함께 잠재적인 리스크를 인지하고,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로 입지를 구축한 그룹 엑소의 멤버 디오(D.O.) 등의 사례와 같이 케이팝 영역의 자본을 여러 장르에서 성공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을 계속해서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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