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몽타주|ZOOM 3

게임 한류의 초입에서
: 무엇이 ‘인디’인가? 인디 다음을 위하여
김재석 디스이즈게임 기자
인디게임이 뜨고 있다.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인디게임 개발사들이 개발을 이어가고 있으며, 우리 정부의 지원 또한 매년 이뤄지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인디게임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저마다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인디게임은 게임사의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소규모 개발자들이 만든 게임으로 정의되곤 하지만, 그 벽은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국제적인 권위의 시상식에서도 인디게임의 기준에 대한 논란이 일며, 인디게임을 규정하는 기준은 이제 모종의 정신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1. 무엇이 인디인가?
한 게임쇼에서 있었던 일이다. 국내 대형 게임 행사에는 어김없이 인디게임을 위한 전시 공간이 마련되곤 한다. 자본력을 갖춘 대형 게임사들과 달리 소규모 게임사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신작을 홍보할 채널이 많지 않기 때문에 게임쇼 출전을 값진 기회로 여기고 있다. 주최 측은 인디게임 전용 공간을 제공하면서 게임 생태계의 상생과 인디게임 발전을 위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는 한다.
그날도 필자는 인디게임 부스를 취재하고 있었다. 유수의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유명 게임사 부스를 지나칠 때 다른 관객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이 회사도 ‘인디’인가?”. 실제로 그 회사는 수십 명 수준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었고, 여러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았으며,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런 곳이 ‘인디’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겠냐는 발언이었던 것으로 짐작한다.
게임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곳곳에서는 ‘무엇이 인디인가?’라는 물음이 뜨거운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질문은 한국의 게임쇼가 아니라 국제적인 공론장에서도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게임업계는 인디게임이라는 개념어의 정의에 관한 합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인디게임을 ‘AAA 게임과 달리 대형 퍼블리셔의 재정 및 기술 지원 없이 개인 또는 소규모 팀이 만든 비디오게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오늘날 대중이 ‘인디게임’을 지칭하는 단어와는 괴리가 없는 걸까? 굴지의 한국 게임들의 예시를 통해서 우리는 ‘인디게임’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논쟁적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2. <데이브 더 다이버>가 촉발한 ‘인디성’ 논란과 산업의 변화
<데이브 더 다이버>는 넥슨 산하 민트로켓이 만든 어드벤처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다이버 ‘데이브’가 변화무쌍한 환경의 바다를 탐험하면서 해산물을 수집하고, 그 고기로 초밥집을 운영한다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6월에 정식 출시된 게임은 국제적인 플랫폼 ‘스팀’에서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은 한편, 메타크리틱(Metacritic)1)에서 90/100점을 기록하며 평단의 극찬 속에서 흥행했다. 최근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이 게임은 전 세계에서 400만 장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자연스럽게 2023년 유수의 게임 시상식에 그 이름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모였다.
1) 게임과 영화, TV 쇼, 음반 등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리뷰를 집계하고 평균 점수를 내는 사이트 (편집자주)
지난 2023년 가장 뜨거운 게임 중 하나였던 <데이브 더 다이버> (사진출처: 민트로켓)
근래 게임산업에서 가장 명망이 높은 시상식을 뽑는다고 한다면, 첫째는 더게임어워드(TGA), 둘째는 골든조이스틱어워드(GJA), 셋째는 영국영화텔레비전예술아카데미게임상(통칭 BAFTA)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 2023년은 유독 <발더스 게이트 3>와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 등 수작이 많았던 해로 어떤 게임이 올해의 게임(GOTY; Game OF The Year)의 영예를 안을지 이목이 쏠렸다. 한국의 게임업계 또한 ‘역대급’으로 열띤 경쟁 속에서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가 어떤 성적을 거둘지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TGA와 GJA는 인디게임상 부문에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를 노미네이트 하면서 일대 논란이 일었다. 넥슨은 지난해 1조 2,5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남긴 세계적인 거함이다. 인디게임의 전통적 정의인 ‘대형 퍼블리셔의 재정 및 기술 지원 없이 개인 또는 소규모 팀이 만든 비디오게임’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인디게임 관계자들은 넥슨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응을 내놓았고, 민트로켓의 황재호 디렉터도 “우리(데이브 더 다이버 개발팀)는 우리가 인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선을 그었다. 게임 부문의 주요 외신 <PC게이머> 또한 <데이브 더 다이버>가 유명 게임 시상식의 ‘인디’ 부문에 이름을 올린 것을 비판하는 칼럼을 게시했다. 넥슨은 자신들이 원치 않는 ‘인디성’ 논란에 휘말리게 됐다.
그렇다면 주최 측은 왜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를 인디게임 부문에 노미네이트한 것인가? TGA를 주최하는 제프 케일리는 이 논란에 “인디란 사람마다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광의의 용어”라며 “어떤 게임이 인디인지 따질 때 개발비 규모, 예산의 출처, 개발팀 규모 중 무엇을 살펴봐야 할까? 혹은 ‘독창적 소규모 게임’이라는 인디 정신을 기준 삼아야 하는 걸까?”라고 반문했다. 제프 케일리의 시상식은 인디게임상 수상의 근거에 대해서 “전통적인 퍼블리셔 시스템 밖에서 뛰어나고 창의적이며 기술적인 업적을 달성한” 게임으로 제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데이브 더 다이버>는 앞선 두 시상식 대신 BAFTA에서 게임 디자인상을 받으며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그렇지만 ‘무엇이 인디냐’에 대한 물음은 아직 살아있다. 근래 출시되는 인디게임은 모두 전통적인 구분 안에 담을 수 없다. 소니 같은 글로벌 게임사뿐 아니라 네오위즈, 스마일게이트, 그라비티 등 국내 게임사들도 인디게임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네오위즈는 <산나비>, <스컬>을 비롯한 여러 인디게임의 퍼블리셔를 자처하고 있고, 스마일게이트는 ‘버닝비버’라는 이름의 인디게임쇼를 주최하는 한편, 자사 게임 플랫폼 스토브에 국내외 유망한 인디게임을 싣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자체 인디게임쇼 ‘버닝비버’를 개최하면서 유망한 인디게임 개발사들을 지원하고 있다. (사진출처: 스마일게이트)
적게는 한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이 만드는 게임 개발은 (어느 창작 분야나 그러하듯) 자본의 영향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대형 퍼블리셔의 재정 및 기술 지원 없이’ 게임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2010년 이후로는 안나푸르나, 니칼리스, 디볼버디지털, 팀17 같은 유통사들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인디게임과 플레이스테이션스토어(소니)나 스팀(밸브)과 같은 유통 플랫폼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3. 인디의 다음을 생각하며: 멋진 추상보다는 구체적인 전략을
일각에서는 일군의 개발자들이 디지털 게임 유통망에서 별다른 기획적 고민 없이 게임을 ‘찍어내듯’ 만들어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게임시장이 과거와 달리 커지면서 인디게임이라는 단어가 주는 매혹성만을 채택하고, 차별점을 이전만큼 추구하지 않으며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을 우려한 주장이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기됐던 ‘인디포칼립스(Indiepocalypse)’에 관한 논의이다. 게이머들이 새로운 것을 탐험하지 않듯, 개발사들도 검증된 수익모델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것을 인디라고 명명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개발사가 원치 않음에도 <데이브 더 다이버>가 인디게임으로 불리는 지금, ‘무엇이 인디인가’라는 물음은 답을 내리기 매우 까다로운 주제가 됐다. 요컨대 인디라는 개념어는 자본이나 인력 같은 형태보다는, ‘도전정신’이나 ‘감성’ 같은 형이상학적 수식에 더 잘 어울리지 않는지 생각하게 된다.
언급한 <데이브 더 다이버>뿐 아니라 <P의 거짓>과 <스텔라 블레이드>도 세계 시장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모바일게임 일변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최근 들어 그 꽃을 피우고 있다. 바야흐로 ‘게임 한류’의 초입에 섰다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간 주요 한국 게임사들은 모바일게임 중심의 개발을 이어왔고, 이에 따라 유저들은 모바일게임 일변도에 대한 피로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2023년 들어 위에서 언급한 게임들이 성공하며 ‘게임 한류’의 초입에 들어서지 않았느냐는 생각을 조심스레 하게 된다. 그 흐름을 잇기 위해 <카잔: 퍼스트 버서커>(넥슨), <인조이>(크래프톤) 등 여러 콘솔/PC게임이 기대 속에서 개발 중이다. 인디게임이라는 멋진 추상보다는 구체적인 전략을 추구하는 이들이 현장에서 보다 더 잘 뛸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게임 한류의 흐름을 이어가는 길은 아닐까?
<스텔라 블레이드>는 플레이스테이션5에만 출시돼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출처: 시프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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