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포커스|FOCUS 1

관광 리터러시
: 여행을 하는 기술과 타자·타문화를 이해하는 태도
김지윤 일본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조교수
우리는 과연 관광 또는 여행하기를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어떻게 배우고 있을까? 특히, 타자와 타문화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법을 어디서 누구로부터 어떻게 배우고 있을까? 관광하기, 여행하기, 국경 넘나들기의 모든 과정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빠르게 디지털화가 가속되면서 모바일 기술 및 정보의 활용 능력, 이른바 ‘디지털 리터러시’를 점점 더 필요로 하고 있다. 모바일 기술이나 외국어 문해력에서 더 나아가, 우리와 다른 문화권을 여행하기에 필요한 자질과 태도를 함양하며 문화 간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관광 리터러시’ 또는 ‘여행의 리터러시’를 함께 고찰해볼 수 있다. 여행하기의 리터러시를 위해 조성돼야 할 관광문화가 있다면 타문화와 타자를 대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며 각자의 관성이나 한국 사회와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일이 아닐까 한다.
1. 출입국 풍경과 변화한 관광문화
처음 해외여행을 떠난 것은 2002년 튀르키예였다. 시내 이동 경로, 숙소명과 지역, 주요 관광지 정보 정도를 출력해 떠난 배낭여행이었는데 종이 뭉치를 분실하며 그야말로 혼돈 속에 현지 사람들의 도움으로 길을 찾고 짐을 풀 수 있었다. 20여 년이 지난 현재 낯선 공항에 발을 딛었을 때 바라보는 풍경과 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너무나도 달라져 우왕좌왕 우여곡절이 들어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공항에서 시내 이동을 위한 Grab, Uber 등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이용, 구글맵 지도와 경로 기능을 이용한 길 찾기, 환전이 필요 없는 모바일 트래블페이 결제는 여행객들에게 이미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출입국 절차에 포함되는 전자비자 사전 신청 및 발급, 전자검역, 디지털 입출국 수속, QR 코드를 통한 절차 안내에 이르기까지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과정과 여행의 각 단계는 놀랍도록 빠르게 디지털화를 통한 절차 간소화가 진행됐다. 그런 한편, 그 모든 방식에 익숙하지 않거나 아날로그식 절차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전보다 축소된 인프라로 인해 때로는 영문도 모른 채 보다 긴 대기소요 시간과 불편함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즉, 관광하기, 여행하기, 국경 넘나들기의 모든 과정은 모바일 기술 및 정보의 활용도 또는 활용 능력, 이른바 스마트폰을 활용한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돼버렸다. Sim 카드와 e-sim을 판매하는 업체들이 공항 내 출국 게이트 앞에 즐비한 것이야말로 이동하는 우리들이 얼마나 전적으로 모바일 정보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렌터카, 시내 이동수단, 모바일 통신 업체가 나란히 늘어선 입국장의 모습이야말로 가시적이고 전통적인 개념인 신체를 이동시키는 모빌리티와 비가시적인 정보의 흐름이라고 하는 미디어 친화적인 모빌리티가 공존하는 상징적 현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집을 떠나 이동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이 관광·여행하기의 전부는 아니다.
사진출처: 셔터스톡
2. 해외여행의 제도화와 여행자 교육
한국에서 관광 목적의 ‘해외여행’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은 것은 해외여행자유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된 1980년대의 일이다. 관광 목적의 여행객 수가 유의미한 인구 집단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 또한 해외여행자유화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출국자 수 추이에서 볼 수 있듯이 1989년 1월, 전면여행자유화 시행 이후 내국인 출국자의 수는 1997년 경제위기, 2008~2009년 금융위기, 2020~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는 꾸준한 증가를 거듭해왔으며 2023년 추이에서 보듯 코로나 이전의 상태를 빠르게 회복 중이다. 내국인 출국자 수가 반드시 관광 목적의 여행객 수만을 집계한 것은 아니며, 개인이 해외에 나가서 하는 활동을 고려할 때 관광 목적을 명확히 분리해내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로 나가는 한국인의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왔음에는 변함이 없다. 실제로 내국인 출국자 수가 집계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였으나 제도적 제약과 경제적 이유로 워낙 그 수는 미미했다. 외국으로 나가는, 즉 아웃바운드(outbound) 국제 관광의 개념이 정책 속에 등장한 것 또한 1980년대의 일이다. 해외에 나가는 일 자체가 드문 경험이던 시절, 여행을 가기 위해 누구나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또 하나의 절차는 ‘소양교육’이라고 불리던 여행자 교육이었다. 1966년 무렵 시작된 이래 사실상 ‘보안교육’이라는 이름의 반공교육이 주된 내용이었다. 해외여행자율화와 더불어 관광 목적의 여권 발급이 늘고 여행자 수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교육 내용의 시효성과 절차의 비효율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소양교육은 1992년을 끝으로 폐지된다(Kim 2024).
3. 우리가 여행하기를 배우는 방법
‘소양교육’이라는 표현도, 해외에 나가는 개개인을 이른바 ‘계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발상도 이제는 모두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질 뿐이다. 그렇다면 해외여행 인구가 급증하며 3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관광 또는 여행하기를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어떻게 배우고 있을까? 또,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여행 준비부터 귀국까지 주요 지역과 나라별로 A부터 Z를 알려주던 여행가이드북은 디지털 콘텐츠와 모바일 기술 중심으로 재편되며 관광문화 속에서 활로를 모색 중이다. 일례로, 많은 국내외 관광 인구를 보유하고 관광 인프라가 오래전부터 구축되어 온 일본에는 1979년 간행된 대표적인 여행 가이드북 브랜드 <지구를 걷는 법 (地球の歩き方)> 시리즈가 있다. 최근 <지구를 걷는 법>은 <드라마 지구를 걷는 법>이라고 하는 새로운 시도를 단행했다. 배우, 모델, 싱어송라이터 등 4인이 한국, 태국, 사이판, 뉴질랜드 등 저마다 좋아하는 나라 한 곳을 정해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여행 과정을 영상화한다. 이를 10부작 드라마로 제작해 방영한 것이 <드라마 지구를 걷는 법>이다. 여행 유튜버의 콘텐츠나 해외 브이로그와 같이 디지털 크리에이터가 매개하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 정보와 관광 생태계가 기존의 관광 매체에 미치는 영향이 분명히 확인되는 사례이다. <톡파원 25시>(JT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MBC), <지구마불 세계여행>(ENA)과 같이, 일부 여행 크리에이터는 마이크로 셀러브리티가 되어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의 제작 방향에 영향을 끼치거나 새로운 프로그램의 주축을 이루기도 한다. 이제 잠재적 여행객들은 타인이 여행하는 모습을 콘텐츠로서 즐기며 그 안에서 활자와 사진 너머의 생생한 정보와 여행하는 감각을 얻는다.
일본 대표 가이드북 시리즈 <지구를 걷는 법>의 드라마화
(사진출처: 지구를 걷는 법(地球の歩き方) 홈페이지 https://www.arukikata.co.jp/special/drama2024/)
4. 해외여행과 여행자가 매개하는 문화
집을 떠나 이동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이 관광·여행하기의 전부는 아니라고 할 때,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타자, 타문화와의 만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타자와 타문화를 알고 이해하는 방법을 어디서 누구로부터 어떻게 배우고 있을까? <유퀴즈 온 더 블럭>(tvN, 242회)에 출연한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은 현지에서 싸우고 욕을 내뱉었던 과거를 반성하며 개인적으로 올렸던 여행 영상이 이후 여행자나 여행문화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명확한 인식과 자성을 내비친다. 최근 해외 맛집 관광 브이로그에 대한 관광지리학 연구는 음식을 경유한 고유한(authentic) 문화 경험이 이른바 글로벌 남반구/북반구 사이의 분리를 개선하고, 서로 다른 문화권 사람들을 연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Rauf & Pasha 2024). 달리 말하자면, 여행 관련 크리에이터나 해외 브이로거와 같은 개별 여행자들이 대면하는 만남의 경험들과 식문화처럼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타문화 체험을 통해 ‘열린 만남’의 공간이 제공된다는 것이다. 현지의 생생한 경험과 좌충우돌의 모험담을 전개하는 예측 불가능한 신기한 콘텐츠 이상으로, 자신과 타인을 계속해서 직접 촬영하는 가운데 여행 크리에이터가 수행하게 되는 일대일 대면 경험의 매개 역할이 부상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반대급부에는 알려져 있다시피 주목경제를 특징으로 하는 유튜브 매체성의 한계로 인해 자극적인 소재와 표현으로 조회수를 끌어내려는 여행 콘텐츠 역시 생산되고 있다.
<지구마불 세계여행> 속 해외여행 문화를 매개하는 여행 크리에이터들 (사진출처: ENA)
5. 여행하기의 리터러시(literacy)
여기서 ‘관광의 시선(tourist gaze)’이라는 개념을 다시금 소환하고자 한다. 관광연구의 고전인 영국의 사회학자 존 어리의 저서 The Tourist Gaze(1990)1)는 관광객이 타문화/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중립적이지도 무결하지도 않으며 본인이 속한 사회 속에서 구조적으로 학습된 것으로, 이로 인한 근본적인 한계와 권력관계를 내재하고 있음을 논한다. 이에 대해 이후 관광 연구자들은 ‘상호 시선(mutual gaze)’ 등의 개념을 통해 관광객과 현지인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교환하는 상호작용의 관계 속에 놓여있다고 논하기도 했다. 이로부터 관광객이란 타문화나 타자를 “바라보는” 위치에 놓여있다는 사유와 그때 각자가 갖고 있는 시선이나 위치에 비대칭적인 권력관계가 있지는 않은지, 그것이 현지와 관광객 사이에 문화적인 위계를 전제하거나 이를 재생산해내고 있지는 않은지를 성찰하는 타자 윤리의 자리가 마련된다. 즉, 우리는 바라보는 위치에 서서 누군가를 바라보는 상황 속에 놓였을 때, 타자와 나 사이의 권력관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다. 이때 권력관계나 문화 간 위계는 계급, 성, 성별, 인종, 민족, 국적 등 다양한 차원에서 발생하고는 한다.
여행하기에 필요한 자질과 태도를 포함한 역량, 또 문화 간 차이에 대한 이해를 도모해 그 배움의 결과로써 얻어지는 기술을 아울러 설명하는 개념으로 ‘관광 리터러시’ 또는 ‘여행의 리터러시’를 함께 고찰해볼 수 있다. 일본의 관광 연구자 세 명이 함께 집필한 <투어리즘 리터러시>(2021)는 문화적 활동으로서 관광 역시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다른 문화적 활동과 마찬가지로 기능 또는 기술(Arts)을 연마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에서 이를 배울 수 있는지 그 장소의 부재를 지적하며, 이들은 ‘투어리즘 리터러시’라는 개념을 통해 어떻게 관광 리터러시를 연마할 수 있을 것인지 제안한다. 해외여행 등 여러 유형의 관광 활동이 대표적인 여가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은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제기해 봄 직하다.
모두가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오늘의 이동 환경에서 출입국 수속과 이동수단, 숙소 예약, 길 찾기 등 기본적인 방법을 제외한 ‘여행하기’의 기술을 어떻게 연마해야 할까? 관광, 여행, 나아가 폭넓게는 다양한 방식으로 타문화권을 방문하는 그 모든 이동의 경험에는 앞서 이야기한 모바일 기기 활용능력과 관련된 디지털 리터러시는 물론, 해당 나라의 언어나 영어 등 의사소통을 위한 외국어 문해력, 우리와 다른 낯선 문화와 자연,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역량과 지혜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원의 이해 능력이 더불어 요구된다.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부딪히고 배우며 이와 같은 ‘여행의 기술’을 익히게 된다. 여행이란 개인의 경험이며, 모두가 민간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하길 기대하며 개별 여행자의 방식을 관리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이다. 누군가의 이동을 관리한다는 발상 역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관광 리터러시, 또는 타문화권을 여행하기에 필요한 ‘교육’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타문화와 타자를 대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고 각자의 관성이나 한국 사회와의 차이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와 같은 경험과 이해의 과정이 과연 우리의 일상에서 충분히 주어지고 있을까? 다른 문화나 사회,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에 대해 우리가 지닌 태도와 시선을 다양한 마주침 속에서 재차 사유하는 일이야말로 ‘관광한류’를 제창하기에 앞서 오늘날 우리 사회의 관광문화를 고찰하기 위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할 과정이지 않을까?
1) 국내에서는 요나스 라르슨과 공저한 2011년 판본이 <관광의 시선>(2021, 소명출판)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참고문헌

Kim, J. (2024). ‘The Danger Anyone Can Encounter’: Security Education Film, Overseas Travelers, and the Location of Global Mobility in South Korea in the 1980s. Korea Journal, 64(1). pp. 23~156.

Rauf, A. A., & Pasha, F. M. (2024). Vlogging gastronomic tourism: understanding Global North-South dynamics in YouTube videos and their audiences’ feedback. Tourism Geographies, 26(3). pp. 407~431. https://doi.org/10.1080/14616688.2024.2325933

Darya, M. (2006). The mutual gaze. Annals of Tourism Research, 33(1). pp. 221~239.

山口誠, 須永和博, 鈴木涼太郎. (2021). 《ツーリズム・リテラシー入門:観光のレッスン》. 新曜社.

John, U. (1990). The Tourist Gaze: Leisure and Travel in Contemporary Societies. London: Sage Publication.

한국관광통계, e-나라지표 www.index.go.kr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조사연구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