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포커스|FOCUS

SBS <신들린 연애> 김재원 CP를 만나다
김아영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조사연구팀장
<TV동물농장>을 만들면서 “개를 때린다”는 제보를 받고, 해당 영상을 촬영해 경찰에 신고했다. 개를 때린 사람은 벌금형을 받았다. 이후 전국에서 제보 영상이 쏟아졌고, 동물보호법이 개정됐다. 통상 ‘시사교양 제작자는 정의로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단 포부는 없었다. 그저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을 건드렸고, 다른 나라 시청자들이 봐도 재밌는 프로그램이길 바랐다. 시사교양 피디가 만든 신묘한 예능 <신들린 연애>도 그렇게 시작됐다.
(출처 : SBS)
우연한 성공이 불러들인 연결점
<신들린 연애>의 해외 반응이 놀라웠어요. 신령님의 판단보단 나의 판단을 따르는, 예쁘고 잘생긴 점술가 여덟 명이 보여준 낭만적 사랑이랄까요? 언론보도를 보니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예능 부문에서 1위를 했다고 하던데요. 바쁘시겠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1위를 한 건 맞는데 나머지 국가에선 어느 정도였는지 정확히 듣진 못했어요. 그래도 반응이 뜨겁다는 얘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사실 SBS에서 만든 콘텐츠는 SBS 콘텐츠허브를 통해서 판매되는데 제작진에게 피드백이 오진 않아요. 회사 수익으로 잡힌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자세한 데이터는 알 수 없지만, 유튜브 채널에 인니어나 중국, 태국어로 달린 댓글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걸 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아쉽진 않으세요? ‘저작권을 내가 가져갔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텐데요.
회삿돈으로 만든 프로그램이니 당연히 회사가 저작권을 가져가야겠죠. 그래도 좀 떼어주면 참 좋겠다 싶긴 합니다(웃음). 해외에서 반응이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했었는데 여러 나라에서 포맷 수출을 해달란 연락을 받고 있어요. 심지어는 <신들린 연애> IP를 걸고 전시사업을 하고 싶다는 제안도 있습니다. ‘돈이 되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전시사업은 뭔가요?
저도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신들린 연애> 포스터를 붙여놓고, 방송에서 등장했던 신명당 세트 앞에 포토존을 만들어 모객을 한 다음, 세트 안쪽에서 비주얼 좋은 점쟁이들이 점사를 보게 해주는 행사를 연다는 거였어요. 해외 팬들에게 이렇게 접근하는 거죠. ‘한국인에게 점사를 보고, 직접 오방기를 뽑거나 엽전을 던지게 해서 내 운세를 보게 만든다.’ SBS가 직접 점 시장에 진출할 순 없으니 IP 판매는 어렵다고 거절했지만, 솔깃했습니다.
(출처 : SBS)
프로그램을 잘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데 부가시장까지 어떻게 염두에 두죠?
그걸 생각하고 만들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사례가 많았어요. 특히 롱런하는 교양 프로그램들이 그렇거든요. 제가 전에 <영재발굴단>이란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와는 달리 아이들과 관련된 사업 여기저기에 저희 프로그램 이름이 언급되는 걸 볼 수 있었어요. 저희 출연자들이 앉았던 의자를 만드는 회사라든지 인터뷰 배경에 걸려있는 어린이 전집을 만든 출판사도 ‘영재발굴단’ 이름을 마케팅에 활용하더라고요. <TV동물농장>도 제가 조연출로 일할 때와 팀장으로 일할 때 사료 시장 규모가 다섯 배 성장했어요. 그러면서 프로그램의 힘이 더욱 강력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콘텐츠 자체가 지닌 힘이랄까요.
샤머니즘도 한류가 될 수 있을까?
한류가 아닌 게 없는 시대에 대체 ‘새로운 한류란 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샤머니즘은 보통 사람들에겐 미지의 영역이잖아요. <신들린 연애>의 소재가 무속신앙인데, 이걸 ‘한국적’이라 말할 수 있다면, 더구나 이 프로그램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한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무속신앙을 자기 문화권에 적합한 형식대로 이어 오고 있긴 하지만요.
사실 처음엔 비판이 많았어요. SBS 제작본부 공모전에서 <신들린 연애> 기획안이 당선된 거거든요. 처음엔 OTT에 나가는 게 원칙이었어요. 지상파에선 다루기 힘들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도 어느 정도 동의했고요. 제가 CP이다보니 프로그램을 팔기 위해 여기저기 다녔는데요. 과기부 산하에 있는 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제작지원사업에서 지원금을 받았어요. 그런데 제게 “미신 프로그램 만드는 거 아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질문을 했어요. 대한민국의 점 시장이 얼만지 아시느냐, 2018년 4조, 코로나19 이후엔 10조 이상이다, 이런 무분별한 점 시장을 그냥 놔둘 거냐고요. 점술가인 출연자들이 누가 나를 연애 상대로 선택했는지 얼마나 잘 맞추는지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맞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점’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할 거다, 자신있다고 답을 했죠. 결국 기획비로 1,000만 원, 시즌2 제작비로는 그보다 더 많이 지원받았어요. 해외 진출 조건으로요. “과학기술부가 인정한 신들린 연애”라는 타이틀로 광고주 마케팅을 해서 해외 진출도 진행할 수 있겠더라고요(웃음).
해외까지 감안하면 피곤하진 않으세요?
아뇨, 피디들은 자기 작품이 더 많이 알려지는 걸 바랄 거예요. 생각지도 않은 수익을 가져다줄 수도 있고요. 인도네시아도 가보고 싶어요. 과연 어떤 면에서 <신들린 연애>를 현지 시청자들이 재밌어했는지 궁금해서요.
“어디에서 터질지 모르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들
과거엔 아시아만 고려해도 충분했던 한류가 이젠 우리도 예상치 못한 지역, 장르에서 호응이 있다 보니 이걸 다 추적할 수가 없다는 게 한계예요. 집계되는 데이터의 범위, 집계 기간도 천차만별이고요. 모든 걸 통합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말예요.
국가 기관에서 시청 관련 데이터를 제공해 주신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시청률이 객관적인 지표처럼 나오고는 있는데, 모집단이 얼마나 대단한진 모르겠지만 시청률 자체에도 오류가 있다고 보잖아요. 이제는 ‘화제성 지수’라는 것도 등장했거든요. 이 역시 집계를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화제성 지수를 볼 만큼 콘텐츠를 평가하는 항목 자체도 달라지고 있는 시대인데, 한류 관련 데이터를 얻긴 더더욱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럼 <신들린 연애>의 해외 반응을 어떻게 아셨나요?
인도네시아 성과는 뷰(Viu)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데이터를 올려줘서 알았던 거고, 중국은 사실상 판매할 수 없는데 불법사이트에서 1위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해외 파트너와 계약할 때 방영권을 파는 건데 이때 ‘데이터를 제공 받는다’는 항목이 있으면 좋은데요. 그게 잘 안 되는 건지 아쉬워요.
인니어, 태국어로 올라온 시청자 댓글을 정말 많이 봤어요. 게시물 번역하기를 그렇게 많이 클릭하게 될 줄 몰랐는데 신기했어요(웃음). 해외 팬들이 그렇게 많았다는 사실이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만 해도 아이돌 스타가 나오면 태국에서 댓글이 올라와요. NCT 도영이 나오면 “도영이 너무 잘생겼다!” 이런 댓글요. 원샷이 많이 잡히는 프로그램이라서 팬들이 좋아하죠. 옷 입은 거, 표정 짓는 거 모두 캡처만 하면 ‘짤’이 돌 수 있어서요. 프로그램 영상을 쇼츠(shorts)로 만들고, 캡션, 해시태그를 달아줘야 해외 팬들을 많이 유입시킬 수 있거든요.
‘한류’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한번 파봐야 하는 영역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요. 2002년 일본 대중문화 전면 개방 이야기 나왔을 때 한국은 문화적 기반이 없어서 먹힐 거라고 했어요. 근데 지금은 완전히 반대죠. <겨울연가>로 욘사마를 만들었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오늘날까지 성장시킨 데에는 문화를 개방했다는 게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 거예요. 이젠 전 세계가 열렸어요. 입사했을 때만 해도 생각지도 못했죠.
제작자들에게 해외 시청 데이터가 제공됐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주셨는데, 또 다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면 뭐가 있을까요?
<신들린 연애>는 사주팔자가 사회적으로 붐이고, 그 흐름이 맞아서 터진 거라고 봐요. 이런 흐름은 운 때가 있는 거고, 강압적으로 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되는 거거든요. 잘 된 프로그램에 대한 사후 평가를 잘 해주고, 이게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연구를 해주시면 저희도 그걸 참고해서 또 다른 도전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신들린 연애>의 성공 사례 분석이 또 다른 성공작을 만드는 데 참고자료가 될 수도 있겠지만, 실패 사례에 대한 분석을 해서 반면교사로 삼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론 그 어떤 제작자도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실패 사례로 거론되길 원치 않을테지만요.
사실 잘 되는 것보다 안 되는 프로그램이 거의 다예요. 90%가 넘거든요(웃음). 실패 이유는 너무 복합적이라 그걸 정리한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봐야겠죠. 솔직히 저는 실패 이유가 ‘재미가 없어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재미’에도 여러 갈래가 있잖아요. 이 프로그램을 보니 내가 똑똑해지는 것 같다, 이것도 즐거움이거든요. 예를 들어 <별에서 온 그대>에서 치킨을 먹잖아요. 전지현 씨가 치킨 먹는 장면 하나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따져볼 순 없겠지만, 전 세계에서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 조사하는 건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 그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는 전지현 씨 소속사는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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