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몽타주|ZOOM 1

해외가 주도하고 수사하는 K:
<엑스오, 키티(XO, Kitty)>에서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까지
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현재의 K-콘텐츠는 일상적으로 글로벌 수용자와 마주한다. 예를 들어 케이팝 밴드들은 데뷔와 함께 국내/외 활동을 동시에 진행하며,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를 통해 팬덤과 소통하고자 한다. 이 가운데 실제로 한국 밖에서 한국을 재현하는 콘텐츠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과 일본에서 제작된 <엑스오, 키티(XO, Kitty)>와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는 각각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한국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여기서의 ‘한국’은 정작 한국인들에게 낯선 감각으로 수용된다.
한류는 한국 밖의 공간에서 확산되는 한국 대중문화를 일컫는다. 한국의 문화가 비/한국적인 공간에서 확산되기 위해서는 주류문화와 경합하고, 갈등하고, 융합되는 등의 일련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한류는 문화적으로 복합적인 위치를 동시에 점유한다. 이는 하나의 트렌드로서의 ‘한류’가 전 세계로 확산돼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류 안에 더 이상 ‘한국’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1. 한국 밖에서 한국을 재현하다
2018년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은 ‘다시 보기’ 영화 2위를 차지한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To All The Boys Series)>는 한국 시청자들에겐 독특한 문화적 경험을 만들어줬던 텍스트 중 하나다. 이 영화의 주인공 라라 진(Lara Jean)은 드라마 설정상 미국에 살고 있지만 아버지가 미국인, 어머니가 한국인으로 복합적인 문화 배경을 가진 한국계 미국인이다. 가족들은 명절에는 한복을 입고, 아침 등교 때마다 작은 플라스틱병에 담긴 요구르트를 마신다. 실제로 이 영화의 원작자인 소설가 제니 한(Jenny Han) 또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전형적인 미국식 하이틴 로맨스 문법을 따른다. 배경도 미국 고등학교이고, 주인공 역을 맡은 라나 콘도어(Lana Therese Condor)는 베트남계 미국인으로 완벽한 영어를 구사한다. 이 영화에서 한국이라는 수사는 케이크 위의 장식품처럼 조그맣게 얹어져 있을 뿐이다. 이외의 모든 요소들은 우리가 이전까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봐온 ‘미국 고등학교 라이프’에서 비롯된다. 이 영화는 후속편과 스핀오프가 제작될 만큼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특히 2023년 제작됐던 스핀오프 작품인 <엑스오, 키티(XO, Kitty)>는 전작에서 주인공이었던 라라 진의 여동생 ‘키티((Kitty Covey)’의 이야기다. 이 드라마는 아예 배경을 미국에서 한국으로 옮겨 국제학교 기숙생활을 하는 키티의 ‘한국에서의 삶’을 전면적으로 보여준다. 포스터에서는 횡단보도, 벚꽃, 롯데월드타워와 같은 요소들이 서울을 이미지화한다. 이 드라마에서 키티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첫사랑에 대한 기록들을 파헤치기 위해 서울국제학교에 진학하고자 한국으로 무작정 떠난다. 키티는 몇 년 전 남산타워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온 한국인 남자친구 ‘대’와 장거리 연애 중이다.
<엑스오, 키티(XO, Kitty)> 포스터 (사진출처: 넷플릭스)
2018년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가 제작된 이후 5년간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변화한 것은 사실이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한국 영화와 시리즈의 글로벌 유통, 케이팝의 전 세계 진출 등 다양한 장르의 K-콘텐츠가 전 세계에 소개돼 콘텐츠 산업의 롱테일 시장을 파고들었다. 한국을 배경으로 미국 드라마가 제작된 것도 고무적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전반적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 전 세계가 경험한 ‘한국’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한 요소다. 키티가 경험하는 한국은 전 세계가 이용하고 수용했던 K-콘텐츠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키티가 처음 인천국제공항에서 나와 보는 장면들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되던 서울의 모습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명동과 강남, 롯데월드타워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배경음악으로는 케이팝이 흘러나오는 것 또한 다분히 의도적이다. 심지어 ‘스타일난다’에서 쇼핑하는 재벌 2세 유리의 등장은 이 드라마에서 재현되는 한국이 전 세계가 소비하거나 이전까지 콘텐츠화됐던 한국이라는 것을 다시금 인지하게 한다.
놀랍게도 이 드라마는 다음 시즌 제작이 결정될 만큼 공개 직후 글로벌에서 상위권을 차지했으나 한국에서는 그다지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드라마에서 한국은 일반적으로 한국인이 경험하지 못하는 ‘한국’을 재현하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한국 배우들은 한국어만큼이나 영어를 완벽하게 사용하고, 한국 고등학교 생활은 미국이 배경이라 해도 무관할 만큼 ‘국제적’으로 그려진다(비록 국제학교가 배경이라 할지라도). 이 때문에 한국 시청자들은 타자의 시선으로 재현된 ‘한국’을 어색해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인식하는 한국은 사실,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2. 타자로서의 한류
우리가 종종 간과하는 것 중 하나는, 한류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소비되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일컫는다는 것이다. 한류는 한국 ‘밖’에서 한국의 국가적 속성을 지속적으로 확산시켜왔다. 그 용어 또한 한국 밖에서 먼저 시작됐으며, 한국의 대중문화가 국경을 넘으면서 하나의 흐름이 되기까지 일정 부분 새로운 문화, 새로운 흐름이라는 가치를 지니고 확산됐다. 한류는 그것이 유통되는 공간에서 명백히 주류 밖의 존재였다. 이는 한류가 한국 밖에서 비주류의, 이방인의, 타자의 이름으로 그곳에 나타났었음을 의미한다. 한류는 지속적으로 확산된 혹은 유통된 장소, 공간의 주류문화와 자신을 조율하며 기존의 문화와 경합, 갈등, 공존 등의 과정을 거쳤다(장민지, 2024).
한류는 이처럼 타자의 얼굴을 하고 각국으로 전파됐다. 한류는 해외 각국에서 그 나라의 정체성과 함께 드러날 수밖에 없는 존재적 특질을 갖는다. 글로벌 사회에서 한류가 드라마-케이팝-그리고 소셜미디어를 통한 한국 라이프스타일의 소비로 그 범주를 확장시키면서 한류는 더더욱 유연하고 유동적으로 진화했다. 결론적으로 글로벌 수용자가 이용하고 소비하는 한류의 정체성은 닫힌 원을 그리지 않고 한쪽이 빈 상태의, 영원히 고정될 수 없는 특징을 갖고 부유할 수밖에 없다.
한류는 이처럼 복합적인 위치를 동시에 점유하기 때문에 한국적 맥락을 벗어나 확산될 가능성을 갖는다. 특히 한류는 문화적 확산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존 문화와 융합하거나 주류문화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그 모습을 변화시켜왔다. 글로벌 곳곳에 확산된 ‘한류’ 속 한국의 이미지는 ‘마치 작은 옷감을 여러 개 이어 붙인’ 패치워크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하나의 트렌드로서의 ‘한류’가 전 세계 전반에 확산돼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류 안에 더 이상 ‘한국’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의미한다.
3. ‘태오’의 등장과 이상화되는 한국 남성성
2024년 1월 23일 시작한 일본 TBS 방송국의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는 일본 배우 니카이도 후미(二階堂 ふみにかいどう ふみ)가 주인공을 맡고 상대 배우로 한국 배우 채종협이 캐스팅되면서 방송 전부터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넷플릭스와 웨이브, 왓챠, 티빙을 통해 2월 14일부터 유통되기 시작했으며 일본 현지에서는 공개되자마자 넷플릭스 드라마 부문 1위에 올랐다. 이 드라마에서 채종협은 이전까지 일본 드라마에서 한국 배우들이 카메오로 출연하거나 심야 드라마에 캐스팅됐던 것과는 달리 프라임 시간대 연속 드라마에서 최초로 주인공의 상대역을 맡은 것으로 보도됐다.1)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 포스터 (사진출처: TBS)
1) “일본 민영방송의 골든 프라임 시간대에 주인공 상대역으로 한국인 배우를 기용하는 것은 처음이다.”라는 TBS의 보도가 있었으나(TBS, 2024. 1. 22), 실제로 후지 TV의 일요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김태희)와 TBS의 <윤무곡-론도>(최지우)가 앞서 존재했다. 다만 두 배우 모두 특정 한국 드라마로 인해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이에 힘입어 드라마에 캐스팅된 것과는 달리, 채종협은 캐스팅 당시 한국에서도 신인배우에 가까웠다.
<아이 러브 유>에서의 태오는 일본 드라마 내 한국 남성 캐릭터가 이전까지 한류, 구체적으로는 일본에서 소비됐던 한국 콘텐츠와는 다른 방식으로 재현됐다. 첫째, 일본이 주도하고 수사하는 ‘한국’을 드라마 텍스트 내에서 재현함과 동시에 둘째, 일차적으로 이를 소비하는 수용자가 자국, 즉 일본 내 시청자들로, 한국적 정체성이 코드화되는 방식이 수용과정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일본 드라마 내에서 ‘한국 (남성) 캐릭터’인 태오는 일본 사회에서 이방인이자 타자이면서 동시에 ‘이상화(理想化)된 섹슈얼리티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장민지, 2024).
태오는 이 드라마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연구를 위해 일본에 있는 대학원에 진학한 상태다. 이런 사회적 정체성은 태오가 일본 사회에서 정박된 존재가 아닌 ‘유동적’ 존재임을 의미한다. 특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배달 일을 하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한국 음식을 배달하는 태오는 드라마에서 단순히 ‘식사’뿐만 아니라 한국적인 것을 소개하는 매개자가 된다. 무엇보다 드라마상에서 한국적인 요소는 일본 사회 곳곳에 태오와 함께 등장한다. 태오가 유리에게 라볶이를 추천하자 그녀는 회사 동료인 마히로와 함께 한국인 식당에 방문하고, 태오의 연구소에 한국 음식이 든 택배가 배달돼 서로 나눠 갖기도 한다. 이는 태오가 재현하는 것이 단순히 한국 남성이 아니라 한국 문화, 더 나아가 일본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파되고 있는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즉 한류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태오’의 캐릭터는 단순한 등장인물을 넘어서, 일본 사회로 하여금 한국 문화를 읽어낼 수 있는 ‘지표’로 작동한다. 이러한 재현 방식은 드라마 전체 구성에서도 반영되는데, 이 드라마가 한국적 로맨스 서사 구조를 명백히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이 러브 유>는 ‘한국 드라마’ 요소를 차용해 로맨스 서사를 진행시킨다. 첫 만남 때, 태오가 빗물에 미끄러지는 유리를 우연히 한 손으로 껴안아 붙잡는 장면은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맨스의 시작을 알리는 연출 구도다. 메인 주인공 커플 이외에도, 서브 남/여 주인공의 로맨스가 함께 진행되며, 여자 주인공 하나를 두고 서로 다른 성격의 남자 주인공들이 삼각구도를 이루는 것 또한 주로 한국 로맨스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클리셰다.
<아이 러브 유>는 빗물에 미끄러지는 여주인공을 한 손으로 껴안아 붙잡는 장면과 같은 ‘한국 드라마’적 요소를 차용해 로맨스 서사를 진행시킨다.
(사진출처: TBS)
결론적으로 이 드라마는 태오가 가지고 있는 한국 문화적 특성, 특히 일본 사회에 일상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한류를 태오의 캐릭터성에 강하게 부과하여 재현함으로써, 일본 사회 내에서 수용되고 있는 한국 문화를 재맥락화하고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타자성을 가진 한국 문화(혹은 한류)가 태오의 캐릭터를 관통해 또 다른 수용-맥락을 생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태오의 행동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통해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태오는 일본에서 한류의 위치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이는 태오의 타자성을 통해 일본 사회에서의 한류, 더 나아가 이 드라마를 수용하는 수용자들의 한류 수용 방식 그 자체를 본 드라마가 재현하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유리의 로맨스 대상으로서 재현되는 태오의 ‘한국적’ 남성성은 기존의 한국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경험해온 한류 수용자들의 맥락 안에서 독해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태오의 한국적 남성성은 한류를 경험하는 수용자들에게 대안적인 남성성을 시험하고 자신이 상상하는 ‘한류’ 그 자체를 시도해볼 수 있는 하나의 ‘빈 공간’으로 존재한다. 결국 그들이 상상하는 한류는 한국이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그들의 수용 맥락 안에서 마음껏 주조될 수 있는 다기적이고 하이브리드적인 문화가 된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태오라는 한국인 남성이 주인공이지만, K-콘텐츠라고 하기에는 산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모호한 지점이 있다. 문제는 단순히 한국인이 등장한다고 해서, 혹은 한국인 스태프가 제작과정에 투입됐다고 해서 한류라고 딱 잘라 정의내릴 수 없다는 데 있다(장민지, 2024).
4. 케이(K)콘텐츠에서 사라지는 케이(K)에 관하여
현재의 K-콘텐츠는 일상적으로 글로벌 수용자와 마주한다. 예를 들어 케이팝 밴드들은 데뷔와 함께 국내/외 활동을 동시에 진행하며,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를 통해 팬덤과 소통하고자 한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앨범도 단순히 한국어로만 진행되는 경우보다는 글로벌 팬덤이 훨씬 향유하기 쉬운 방식, 즉 영어로 제작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동시에 한국 밖의 국가들도 K-콘텐츠 요소를 적극 활용해 그들의 콘텐츠 제작을 시도한다. 이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K-콘텐츠에서 K(케이)가 사라지는 경우들도 종종 발견된다. 실제로 글로벌화된 케이팝의 생산에는 다양한 국적의 뮤지션들이 참여하게 되고, 이는 국적을 지운 채 혼종적인 모습으로 전 세계 플랫폼에서 케이팝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기도 한다. 앞서 살펴본 <엑스오, 키티>나 <아이 러브 유>와 같은 드라마는 한국을 소재로 하지만 각각 미국과 일본에서 제작한 콘텐츠다.
그렇다면 K-콘텐츠 정의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문화는 ‘변화’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속될 수 있다는 맥락에서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으로만 바라보기 어렵다. 다만 K-콘텐츠가 글로벌로 유통되며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의 감각과 주류문화로 진입하기 시작한 현재의 감각은 매우 다르다. 과연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것은 가능한가. 특수성과 보편성이 함께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우리는 K-콘텐츠를 통해 되물을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장민지 (2024). 「일본 드라마 <Eye Love You(2024)>의 캐릭터 ‘태오’를 통해 재현된 ‘한국’ 남성성과 한류의 현재성 분석」.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 서울.

TBS (2024. 1. 22.). ドラマ 『Eye Love You』で日本ドラマに初挑戦!車賢智に聞く、日韓ドラマ制作現場の違い. TBS. https://innovation.tbs.co.jp/neo_interview/652/?fbclid=IwAR0lw5_cTxeaDstpIbrSUFG-E8bj5VAX0Kt8SGAU18864CQn0LoH09Ufy0Q_aem_AWLSuwQ-Ntm9ae1EevYgUoROh34I3ZvUInPZzvu_ZlkoZXpZaPKUwKcvgE0m2xwwj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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