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한류 심층분석|일본

다시 뜨거워지는 일본 한류
나리카와 아야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연구원
한류 열풍이 다시 일본 전역에 불고 있다. 2020년부터 시작된 제4차 한류 붐은 케이팝, 드라마, 영화, 뮤지컬, 문학, 음식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일본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다. 특히 케이팝 그룹의 인기가 지속되고 있으며, 한국 드라마와 영화 속 문화 요소들이 일본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한국 문학작품의 번역 출판이 크게 증가하는 등 한류 콘텐츠가 일본 내에서 확산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한일 양국 간 문화 교류와 협업이 활발해지고 있다. OTT 플랫폼의 보급으로 한국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고, 양국 제작진 간 협력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한류를 더욱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문화다양성 증진과 상호 이해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1. 들어가며
일본에서 2020년부터 시작된 제4차 한류 붐의 열기는 식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케이팝, 드라마, 영화, 뮤지컬, 문학, 음식 등 한류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일본 사회에 정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일 관계가 개선되면서 교류가 활발해지고 한때의 혐한 분위기도 어느 정도 사그라졌다.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4관왕을 달성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2019)은 일본에서도 역대 한국 영화 흥행 기록을 경신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코로나19(COVID-19)의 영향으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넷플릭스 가입자가 증가했고,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등이 인기를 끌었다. 이에 따라 2016년부터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등 케이팝을 중심으로 하던 제3차 한류 붐이 2020년경에는 영화, 드라마로 확대되면서 제4차 한류 붐으로 이어졌다. 2023년에 들어서자 코로나19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되면서 콘서트나 뮤지컬 등 공연도 다시 활발해졌다. 이에 본고에서는 일본에서의 케이팝, 드라마, 영화, 연극/뮤지컬, 문학 등 여러 분야의 한류 현황을 살펴보고, 일본에서 한류의 미래를 전망해 보고자 한다.
2. 한류 현황
1) 케이팝
일본 NHK에서는 매년 12월 31일에 연말 가요제 형식의 음악 프로그램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戦)>을 방영한다. 2023년에는 역대 최다 케이팝 그룹이 여기에 출연했다. 세븐틴(SEVENTEEN), 스트레이키즈(Stray Kids), 뉴진스(NewJeans), 르세라핌(LE SSERAFIM), 미사모(MISAMO), 니쥬(NiziU), JO1(ジェイオーワン) 등 한국계 그룹 7팀이 출연했다. 이 중 미사모, 니쥬, JO1은 멤버가 모두 일본인으로 구성된 케이팝 그룹이다. 미사모는 트와이스의 일본 멤버 미나, 사나, 모모로 구성된 3인조 그룹이고, 니쥬는 JYP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오디션 프로그램 <니지 프로젝트(ニジプロジェクト)>를 통해 결성됐다. JO1 또한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재팬(PRODUCE 101 JAPAN)>에서 만들어진 그룹이다. JO1의 소속사 LAPONE 엔터테인먼트는 CJ ENM과 요시모토 흥업의 합작사다. 이런 이유로 매체에 따라 <홍백가합전>에 출연한 케이팝 그룹을, 니쥬와 JO1을 제외한 5팀이라고 보도하는 경우도 많다. 5팀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역대 최다 기록이다. 르세라핌도 멤버 5명 중 2명이 일본인이며, 일본인 멤버가 있는 그룹은 친근감을 주기 때문인지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다. 또 세븐틴은 2023년 일본 콘서트 관람객 수 순위에서 2위(76만 7,000명)를 차지했으며, 스트레이키즈는 10위(53만 3,000명)에 올라 있다(中桐, 2024. 1. 31.). 뉴진스는 아직 일본에서 정식으로 데뷔하지는 않았으나, 2023년 <홍백가합전> 하루 전 제65회 일본레코드대상에서도 <디토(Ditto)>로 우수작품상을 받았을 만큼 일본 내에서 팬덤을 확보하고 있다. <홍백가합전>은 국민 프로그램이라는 특성상 케이팝 그룹도 일반적으로 일본어 가사로 노래하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지만, 2023년 <홍백가합전>에서 뉴진스는 한국어 가사로 노래해 주목받았다.
<홍백가합전>은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한일 관계에 영향을 받기 쉽다.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1987년, 한국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조용필이 <홍백가합전>에 출연했다. 조용필은 1982년 일본에서 데뷔한 후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으로 인지도를 쌓았다. 한일 월드컵이 개최된 2002년부터는 보아(BoA)가 6년 연속으로 <홍백가합전>에 출연했고, 드라마 <겨울연가>를 계기로 제1차 한류 붐이 불기 시작한 2004년에는 <겨울연가> 주제가를 부른 류(Ryu)가 출연했다. 제2차 한류 붐의 영향으로 2011년에는 동방신기, 카라(KARA), 소녀시대 등 3팀이 출연했는데, 바로 다음 해인 2012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면서 한일 관계가 급격히 악화돼 그 후 5년 동안 한국 가수의 출연이 없었다. 그러다가 제3차 한류 붐이라고 불리는 2017년부터 트와이스가 3년 연속 출연했고, 한일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한 2022년에는 트와이스, 아이브(IVE), 르세라핌, 니쥬, JO1 5팀의 모습을 <홍백가합전>에서 볼 수 있었다.
2023년 <홍백가합전>에 다수의 케이팝 그룹이 출연한 데에는 한일 관계 개선은 물론 일본 국내 사정도 영향을 미쳤다. 2023년 3월 영국 BBC는 <포식자: 제이팝의 비밀 스캔들(Predator: The Secret Scandal of J-Pop)>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일본 아이돌 기획사인 쟈니스 사무소 창업자 쟈니스 키타가와의 성착취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해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후 일본 언론에서도 이 사건을 다루기 시작해 일본의 연예계, 아이돌 업계에 지각 변동을 불러일으켰다. 이로 인해 2023년에 <홍백가합전>에는 쟈니스 사무소에 소속된 가수들이 출연하지 않았고, 이는 케이팝 그룹에게는 기회로 작용했다. <홍백가합전>은 한때 70∼80%대라는 아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일본 음악 프로그램 중 단연 독보적인 입지를 자랑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최근에는 젊은 시청자층이 줄면서 시청률도 20∼30%대로 떨어졌다. 이런 측면에서 케이팝 그룹의 출연을 늘린 것은 젊은 시청자들의 취향과 소비 성향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23년 제74회 홍백가합전에 출연한 뉴진스
(사진출처: NHK)
2) 드라마
2024년 1월부터 T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에서는 남자 주인공 태오 역을 한국인 배우 채종협이 연기했다. 한국 배우가 일본 지상파 연속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첫 회 시청률은 5∼6%대로 특별히 높지 않았지만, 첫 방송(1월 23일) 후 넷플릭스 ‘오늘의 시리즈 톱 10(일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온라인을 중심으로 일본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아이 러브 유>에는 한국어나 한국 문화도 많이 등장한다. 여자 주인공 유리(니카이도 후미)는 눈을 보면 속마음이 들리는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태오의 속마음은 한국어로 들린다. 태오가 소리를 내서 말한 한국어에는 일본어 자막이 나오지만, 속마음에는 일본어 자막이 나오지 않는다. 한국어를 모르는 시청자는 한국어를 모르는 유리와 같은 마음을 공유하게 된다. ‘뭐라고 한 거지?’라는 궁금증이 방송 후 화제가 되면서 드라마와 한국어 두 가지 모두에 관심이 모였다. TVer, U-NEXT 등의 일본 OTT에는 마음의 소리에도 일본어 자막이 나와서 지상파 방송을 본 후 다시 OTT로 한국어 뜻을 확인하는 새로운 시청 방식도 생겨났다.
일본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한국 음식에 대한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 드라마는 일반적으로 밥을 먹는 장면이 한국에 비해 덜 등장하는 편인데, <아이 러브 유>에는 식사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일본 시청자들은 한국 드라마처럼 남녀 주인공이 같이 밥을 먹으면서 친해지는 모습이나 순두부나 잡채, 라볶이 등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러 한국 음식을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또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는 치킨이 PPL(간접광고)로 많이 나왔는데, 이는 그전까지 거의 없었던 치킨집이 일본에 많이 생기는 계기가 됐다. <이태원 클라쓰>는 음식에 관한 드라마로 일본에서 순두부와 소주를 유행시켰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나오는 라면도 최근 일본 마트나 편의점에 여러 종류가 진열되고 있다. 특히 영화 <기생충>에 짜파구리가 등장하면서 짜파게티와 너구리가 크게 주목받았다. 2023년 한국의 라면 수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었는데 국가별 수출 규모로는 중국, 미국에 이어 일본이 3위다(박상돈, 2023. 11. 20.).
‘밥 먹었어요?’라는 말은 한국에서는 인사말이지만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 일본에서는 같은 질문을, 같이 밥을 먹고 싶다거나 관심이 있다는 의미로 오해할 수도 있다. <아이 러브 유>의 유리는 밥을 먹었는지 물어보는 태오에게 설렜다가 다른 동료한테도 물어보는 걸 보고 실망한다. 이렇듯 드라마 곳곳에 한일 문화의 차이가 드러나고 그것이 주인공들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배우 채종협은 드라마 <알고있지만,>, <무인도의 디바> 등을 통해 일본에서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지만, <아이 러브 유> 방영 직후부터 급격하게 일본 내 인기가 높아졌다. 그는 2024년 1월에 일본 공식 X 계정을 개설했는데 3월 중순에는 팔로워 수가 6만 9,000명을 넘었다. 단 2개월 만에 <알고있지만,>의 주연이었던 배우 송강의 팔로워 수를 추월하고 한국 배우의 일본 공식 X 중 팔로워 수 1위를 차지했다.
최근 한일 남녀 배우의 드라마 주연이 잇따르고 있다. 일본 넷플릭스 드라마 <로맨틱 어나니머스>에는 한국 여배우 한효주가 일본 남배우 오구리 슌과 함께 나온다(박로사, 2024. 3. 13.). 원작은 프랑스 영화로, 한국 제작사 용필름이 제작하는 일본 드라마다.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2017)의 츠키카와 쇼 감독이 연출을 맡아 2024년 3월 초에 크랭크인에 들어섰다. 반대로 한국 드라마에 일본 인기 배우가 주연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쿠팡플레이에서 2024년 공개 예정인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 일본 남배우 사카구치 켄타로가 한국 여배우 이세영과 함께 주연을 맡아 기대감을 불러 모으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 크게 인기를 끈 한국 드라마는 2021년에 공개된 <오징어 게임> 이후 없었다. 일본에서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가 화제가 됐던 2020년에는 최신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는 OTT 플랫폼이 넷플릭스에 한정돼 있었기 때문에 인기가 집중된 경향이 있었지만, 요즘은 최신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 늘어나서 시청자가 분산된 상황이다. 기존에는 일본 넷플릭스의 순위만 봐도 한국 드라마의 인기 순위를 알 수 있었으나, 이제는 일본에서 어떤 한국 드라마가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예를 들어 최근 한국에서 화제가 된 드라마 <무빙>은 디즈니플러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아마존프라임비디오를 통해 일본 현지에 공개됐다. 일본 지상파에서도 한국 드라마를 방송하지만 최신 드라마는 거의 없다. 후지TV에서는 2023년 11월부터 한국에서 2020년 방영한 <부부의 세계>와 2018년 작품인 <SKY 캐슬>을 방송하는 등 몇 년 지난 작품 위주로 편성하고 있다.
3) 영화
한국 영화도 <기생충> 이후 일본에서 크게 화제가 된 작품은 없지만, 공개 편수는 증가했다. 일본 외국영화수입배급협회에 의하면 2023년 일본에서 극장 개봉한 외국영화는 총 531편이고, 나라별로는 1위 미국(152편), 2위 한국(70편)이다(外国映画輸入配給協会, 2023). 한국과 프랑스의 합작 영화도 1편 개봉했다. 과거 10년을 봐도 한국 영화는 일본 개봉작의 매년 평균 50편 전후로 개봉 편수 3위권에 들어갔다. 2023년 70편 개봉은 역대 최다 기록이다.
2023년에 일본 극장에 개봉한 대작으로는 <헤어질 결심>, <공조 2: 인터내셔널>, <교섭>, <비상선언>, <한산: 용의 출현> 등이 있고, 이 중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박찬욱 감독이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헤어질 결심>이다. 일본 개봉 전에 박찬욱 감독은 무대 인사를 진행했는데 이때 일본 배우 이소무라 하야토도 같이 등장해 꽃다발과 함께 <헤어질 결심>을 본 소감을 전했다. 이소무라는 제75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일본 영화 <플랜 75>(2022)의 출연 배우로 영화제에 함께 참가했던 인연으로 참석한 것이다. 한국 영화 역대 관객 수 1위를 기록한 <명량>(2014)은 일본에서 극장 개봉 없이 DVD로 출시됐다. 같은 이순신을 다룬 김한민 감독의 <한산>(2022)이 극장에서 개봉한 것은 한일 관계 개선에 따라 그 소재가 일본에서 덜 민감해진 까닭인 듯하다.
2022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한국 영화 <브로커>의 주연 배우 송강호가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한일 협업 영화가 계속 나오고 있다. 2023년에 한일 양국에서 극장 개봉한 한국 영화 <옥수역귀신>은 일본 영화 <링>(1998)의 각본가로 알려진 다카하시 히로시가 참여했다. 한편 한국 영화 <끝까지 간다>(2014)는 거의 10년이 지난 2023년에 일본에서 재개봉했는데, 이는 일본에서 리메이크 영화가 나왔기 때문이다. 리메이크판의 제목도 <끝까지 간다>로 오카다 준이치가 주연을 맡아 2023년에 일본에서 개봉했다.
최근 일본에서 화제를 모은 한국 영화는 <범죄도시 3>이다. 주연 배우인 마동석의 인기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일본 배우 아오키 무네타카와 쿠니무라 준이 출연한 덕이다. 특히 아오키는 악역으로 등장해 일본도를 휘두르면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2024년 2월 개봉을 앞두고 마동석이 일본을 찾아 아오키, 쿠니무라와 함께 무대 인사를 한 것도 화제가 됐다. 한편 한국에서는 극장 개봉한 영화가 일본에서는 OTT로만 공개되는 경우도 있다. 이병헌 감독의 <드림>(2023)은 일본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배우 박서준과 아이유가 주연으로 활약했지만 바로 넷플릭스로 넘어가서 일본 극장에서 볼 기회는 없었다.
2023년 일본에서 극장 개봉한 한국 영화 70편 중에는 독립영화도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오마주>(2022), <애프터 미투>(2022),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2), <다음 소희>(2022) 등 한국 여성 영화가 꾸준히 관심을 끌고 있다. 2022년에 『한국여성영화 우리들의 이야기(韓国女性映画 わたしたちの物語)』라는 단행본이 출간됐을 정도로 일본에서는 한국 여성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는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한국 문학 붐을 일으켜, 그 후 한국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과 관련이 있다.
2024년 3월 말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2021)이 일본에서 개봉했다. 이 작품은 오세연 감독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성범죄자가 되면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연예인 팬들을 인터뷰하면서 만든 영화다. 성범죄를 다룬 영화로 몰카 라이브 방송을 소재로 한 <라방>도 2023년에 일본에서 개봉했다. 이웃 나라의 성범죄에 대한 관심 또한 페미니즘과 연관된 부분이다.
일본 영화계에서는 한국 영화계를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이는 고레에다 감독의 영향도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2022년 <브로커>로 칸국제영화제에 다녀온 다음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은 노동 환경이 개선돼서 주 52시간까지라는 근무시간 제한이 명확히 정해져 있다”고 지적하며(ピノコ, 2022. 6. 14.), 쉬는 날 없이 장시간 일하는 일본 영화 현장을 비판했다.
이후 2023년 12월에는 교토대학 남녀공동참획추진센터 주최로 교토대학에서 ‘여성 영화 산업 종사자의 목소리를 듣다: 일본과 한국의 영화 제작 노동 환경과 동향’이라는 제목의 포럼이 열렸다. <브로커> 제작자 후쿠마 미유키,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 등이 참석해 제작 현장의 노동 환경과 젠더 격차에 관한 논의를 이어 갔다. 또한 2024년 1월에는 문화청과 일본영화프로젝트(Japanese Film Project)에서 온라인 강좌 ‘한국 영화계에서 배우는 영화 스태프의 계약 사정’을 주최해 일본 영화 관계자 등 400여 명이 이를 시청했다. 한국에서 쓰고 있는 표준근로계약서를 일본 영화 현장에도 도입하려는 취지로 <브로커> 조감독을 맡은 후지모토 신스케를 비롯한 한일 영화인들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후지모토는 한일 협업 영화의 현장을 가장 많이 경험한 인물이다.
4) 연극/뮤지컬
한국 원작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공연으로 만들어지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2022년에는 소설 『아몬드』가 무대화됐다. 손원평의 『아몬드』는 일본에서 2020년 일본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무대 각본에는 일본어판 소설의 대사가 거의 그대로 반영됐다.
2023년에는 영화 <기생충>이 일본에서 연극으로 만들어져서 상연되기도 했다. 재일한국인 정의신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정의신은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의 각본과 연출, 이 작품을 영화화한 <용길이네 곱창집>(2018)의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 서울의 빈부격차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폭우와 침수는, 일본 연극에서 1995년 고베대지진을 배경으로 현지에 맞게 재구성됐다. 무대 위에서 침수를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사정도 있었지만, 실제로 지진 피해가 가장 심했던 효고현 안에서도 산 쪽 고급 주택가 아시야는 비교적 피해가 적었고 바다에 가까운 나가타는 목조 가옥이 많아 큰 피해를 봤다. 구체적인 지명이 나오지 않아도 아시야와 나가타를 떠오르게 구성했다. 각본가이자 연출가인 정의신이 효고현 출신일 뿐만 아니라, 나가타는 한국인-조선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일본에서 연극으로 만들어진 <기생충>과 뮤지컬로 만들어진 <빈센조>의 포스터
(사진출처: CJ ENM, 에이벡스)
2023년 드라마 <빈센조>도 일본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져 상연됐다. 원작 드라마를 제작한 스튜디오드래곤이 기획 협력으로 참여했다. 2024년 2월에는 한국 뮤지컬 <사랑의 불시착>이 일본에서 상연됐다. 한국에서 2023년에 뮤지컬로 만들어진 <사랑의 불시착>의 일본 공연에는 케이팝 아이돌 아스트로(ASTRO)의 윤산하와 진진, 더보이즈(THE BOYZ)의 상연이 출연해 원작 드라마 팬과 출연 아이돌 팬의 관심을 끌었다. <사랑의 불시착>처럼 한국 뮤지컬을 한국 배우와 함께 일본에서 상연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한국 뮤지컬에 일본 배우를 섭외해 상연하는 경우는 늘어나고 있다. 도호는 <프랑켄슈타인>, <웃는 남자>, <베토벤>을 일본 배우들로 상연했다.
또한 한국 뮤지컬 배우의 일본 콘서트도 늘어나고 있다. 2023년 6월에는 한일 뮤지컬 배우가 함께 출연하는 콘서트가 도쿄와 오사카에서 열렸다. 이 콘서트에는 한국 뮤지컬 배우 유준상, 박민성, 민우혁과 일본 뮤지컬 배우 카토 카즈키가 출연했고, 이들은 한국 뮤지컬 <프랑켄슈타인>과 <벤허>의 곡을 노래했다. 유준상처럼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하면서 뮤지컬 배우로 활약하거나 JYJ의 김준수처럼 케이팝 아이돌이 뮤지컬 배우로 활약하는 경우가 많아 영화/드라마, 케이팝 팬들이 뮤지컬 팬이 되는 경우도 많다. 뮤지컬은 노래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연극에 비해 언어적 장벽이 낮아 한국에 여행을 와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한국 문화 중 하나다.
5) 문학
일본에서 한국 문학이 잘 팔리기 시작한 것은 소설 『82년생 김지영』 일본어판이 나온 2018년 이후의 일이다. 『82년생 김지영』은 29만 부가 팔렸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한국 책은 김수현의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로 무려 58만 부가 팔렸다. 이 책은 방탄소년단의 멤버 정국이 읽은 책으로 알려져 팬들도 관심을 가졌다. 그 밖에 소설 『아몬드』, 백세희의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등도 일본 현지에서 인기다.
일본어로 번역되는 책이 몇 년 사이에 급증했는데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한국 책을 선구적으로 일본에서 번역 출판하기 시작한 출판사 ‘쿠온’ 김승복 대표는 “한국과 일본 독자의 감수성이 가까워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쿠온은 2011년부터 ‘새로운 한국 문학’ 시리즈를 시작했고, 그 첫 번째 작품으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일본어로 번역 출판했다. 그 후 2016년에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문학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또한 쿠온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20권을 모두 번역하고 2024년 일본 독자들과 함께 『토지』와 박경리에 관련된 한국 지방을 찾는 문학 기행을 계획하고 있다. 일본어로 번역 출판된 한국 책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지만, 쿠온에 의하면 번역서는 2016년 22권에서 2021년에는 87권(문학만)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번역 출판이 증가한 배경에는 번역가 수의 증가가 있다. 한국어 학습자가 많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한류 붐 이후의 일이다.
3. 나가며
NHK <홍백가합전>에 한국계 아이돌 그룹이 무려 7팀이나 출연하고, 뉴진스는 한국어 가사로 노래하고, 지상파 드라마에 일본어 자막 없이 한국어가 들려도 부정적인 반응이 적은 이유는 한일 관계 개선에 따라 혐한 분위기가 어느 정도 사그라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 배우가 주연하고 호평을 받은 드라마 <아이 러브 유>의 성공은 앞으로 한일 드라마 제작에 다양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며, 이미 한일 남녀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양국에서 제작되고 있는 점은 앞으로 한일 공동제작 및 협력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팬데믹 시기를 거쳐 OTT 플랫폼이 전 세계적으로 보급된 것은 양국이 서로의 시장을 의식해 한일 협업을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 한일 협업은 문화 전반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니쥬가 탄생한 <니지 프로젝트>는 JYP 엔터테인먼트와 소니 뮤직이 협업해서 만든 오디션 프로그램이었고, 마찬가지로 JO1이 탄생한 <프로듀스 101 재팬>은 요시모토 흥업과 CJ ENM이 협업해서 만든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과 손을 잡고 일본 시장에 진출하는 방식이 성공한 사례다.
드라마에서 음식으로, 케이팝에서 뮤지컬로, 다양한 분야의 한국 문화에 일본인의 관심이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젊은 층의 한국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은 앞으로도 한류가 지속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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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돈 (2023. 11. 20). ‘60주년’ K-라면 수출 올해 1조 첫 돌파…9년째 ‘사상 최대’.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31119022300030

外国映画輸入配給協会 (2023. 3. 14). “2023年外映概況 国別一覧表”. 一般社団法人外国映画輸入配給協会. https://www.gaihai.jp/pdf/nation_R05.pdf

中桐基善 (2024. 1. 31). 23年ライブ動員力ランキング 1位は三代目、2位はセブチ、躍進したのは.... 《日経クロストレンド》. https://xtrend.nikkei.com/atcl/contents/18/00680/00014/

ピノコ (2022. 6. 14). ベイビー・ブローカー是枝裕和監督もビックリ 韓国の「働き方改革」と撮影現場. 《J-CASTニュース》. https://www.j-cast.com/tv/2022/06/144393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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