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디어 산업은 글로벌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다. 글로벌 OTT의 경우 구독자를 유입하고 이들을 플랫폼에 고착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취향의 다변화를 이끌어야한다. 이러한 미디어 산업 생태계의 변화는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주류 문화’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이용자들은 OTT를 통해 다양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끊임없이 찾고 이를 소비하고자 하는데, 이렇게 변화된 이용자들의 미디어 관습은 기업들의 롱테일 전략과도 연결된다. 2021년 넷플릭스는 아넨버그 포용정책 센터(Annenberg Inclusion Initiative)에 위탁하여 조사된 다양성/포용 보고서(Inclusion/diversity report)를 발간한 바 있다. 넷플릭스가 이러한 보고서를 발간한데는 자신들이 단순히 ‘잘 팔리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제작인력을 포용하고, 다양한 이용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브랜드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자 한 것으로 사료된다. 이러한 넷플릭스의 정치적인 위치 선점은 제작사와 이용자 모두 소수의 정체성과 취향에 주목하고 있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
2019년 출간된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제 39회 신동엽 문학상을 수상하고, 이후 15개국으로 번역되어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와, 2023년 더블린 문학상 후보, 2024년 프랑스 메디치상의 외국문학 부문 1차 후보까지 올랐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작가가 직접 각색에 참여한 OTT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은 공개 전부터 일부 단체들의 반대 시위가 벌어지며 티저가 소셜 미디어 상에서 삭제되는 등, 홍보에 차질이 생겼다.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좌)을 원작으로 한 OTT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우)
(출처: 창비 https://www.changbi.com / 티빙 https://www.tving.com)
(출처: 창비 https://www.changbi.com / 티빙 https://www.tving.com)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2010년 SBS에서 방영되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퀴어 커플에 대한 혐오 논란이 일어난 지 14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한국은 어떤 방식으로 주변화된 섹슈얼리티를 미디어-콘텐츠에서 재현해왔을까. 14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주체들이 등장하는 콘텐츠를 전 세계적으로 접할 수 있는, 그야말로 자신의 취향을 만들어나가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큐레이팅’을 통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이자 생산자가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어떤 주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고, 미디어는 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조명하지 못한다. 미디어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해서 전 세계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때, 한류는 과연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문화로 전 세계인들에게 인지되고 있는가?
<센스 8>에서부터 <하트스토퍼까지> : 섹슈얼리티와 퀴어의 감각을 재현하는 넷플릭스
한국에 <매트릭스>(1999)의 감독을 잘 알려진 워쇼스키Wachowski 자매(그들은 워쇼스키 형제였던 적도, 남매였던 적도 있다)가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센스 8(sense8)>(2015)은 감독들의 정체성만큼이나 심오하고 경계를 흐리는 섹슈얼리티들을 미디어로 재현한다. <센스 8>의 주인공은 각기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여덟 사람이다. 이처럼 각각의 세계에 다양하게 흩어져 사는 여덟 사람이 알고 보면 하나의 감각적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미래적 능력을 갖고 있다. 여기서 미래적 능력은 서로 공감하고 순간적으로 공존 가능하며, 정신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같은 날짜, 같은 시간에 태어난 ‘동기’들이다.
<센스8> 포스터
(출처 : 넷플릭스 https://www.netflix.com)
(출처 : 넷플릭스 https://www.netflix.com)
이 시리즈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바로 한국 배우 배두나(박선 역)이다. 배두나는 여기서 한 명의 주인공일 뿐이지만, 동시에 한국 전체의 이미지를 재현하기도 한다. 박선과 함께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인 노미는 법정성별이 남성이었던 트랜스 여성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백인 중산층 남성으로 태어나 일찍이 자신의 섹스-젠더 정체성이 여성임을 깨닫고, 성별재지정수술과 호르몬 치료를 병행한 MTF(Male to Female: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다. 그녀는 <센스 8>에서 여성이자 레즈비언으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있다. 이 역을 맡았던 제이미 클레이턴(Jamie Clayton) 역시 미국의 배우이자 모델이며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센스 8>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 중에서도 단연코 국적, 성별, 인종 및 다양한 경계 너머의 주체들을 그려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콘텐츠 안에서의 다양성이 미디어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텍스트가 된다. 동시에 <센스 8>은 다양한 섹슈얼리티 정체성과 친밀성의 관계를 고민하게 만드는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섹슈얼리티와 퀴어의 감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섹슈얼리티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 섹슈얼리티 내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분열을 우리는 어떻게 감각해야하는가, 섹슈얼리티와 퀴어라는 단어를 어떤 위치에서 어떤 고찰을 통해 발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이 드라마는 ‘공감’이라는 주제를 통해 말하고자 한다.
<센스 8>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 중에서도 단연코 국적, 성별, 인종 및 다양한 경계 너머의 주체들을 그려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콘텐츠 안에서의 다양성이 미디어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텍스트가 된다. 동시에 <센스 8>은 다양한 섹슈얼리티 정체성과 친밀성의 관계를 고민하게 만드는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섹슈얼리티와 퀴어의 감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섹슈얼리티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 섹슈얼리티 내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분열을 우리는 어떻게 감각해야하는가, 섹슈얼리티와 퀴어라는 단어를 어떤 위치에서 어떤 고찰을 통해 발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이 드라마는 ‘공감’이라는 주제를 통해 말하고자 한다.
<하트스토퍼> 포스터
(출처 : 넷플릭스 https://www.netflix.com)
(출처 : 넷플릭스 https://www.netflix.com)
그 후로부터 8년, 넷플릭스는 어떤 행보를 보이고 있는가. 2021년부터 넷플릭스 제작이 확정되어 2024년 현재 시즌 3까지 제작된 <하트스토퍼(Heartstopper)>는 2020 굿리즈 그래픽 노블 부문 1위를 받은 앨리스 오스먼(Alice Oseman)의 작품이 원작이다. 앨리스 오스만은 2016년부터 오픈 플랫폼에서 이 작품을 현재까지 연재해왔다. 동성을 좋아하는 찰리와 찰리를 좋아하면서 자신의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점차 알아나가고 있는 닉의 성장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단순히 성적 다양성뿐만 아니라 10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관계성과 친밀성을 주인공들을 통해 스펙트럼처럼 다루고 있다.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일, 트랜스젠더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일, 그리고 그런 그/녀를 우정을 넘어 애정으로 바라보는 일 등, 이 작품은 성별을 넘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는 많은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콘텐츠에는 우리가 이전까지 ‘인지하지 못했거나’ ‘인지할 생각조차 안하거나’ ‘혹은 반대하고 대립하고 혐오했던’ 주변화된 성적 정체성을 가진 주체들을 재현하고 있고, 그들의(혹은 우리의) 연대를 돕고 있다. 이는 젠더에 대한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이를 재현함으로써 이들을(우리를) ‘모두’로 묶기 위한 OTT의 상업적 전략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글로벌 콘텐츠를 기획할 수 없을 뿐 더러, 한류가 확산될 때의 이미지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한류는 이들을(우리를) 포용하고, 또다시 포함할 수 있을 만큼의 이미지를 갖추었는지, 국경을 넘어서는 모두의 문제를 다룰 만한 준비가 되었는지에 대한 답변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콘텐츠에는 우리가 이전까지 ‘인지하지 못했거나’ ‘인지할 생각조차 안하거나’ ‘혹은 반대하고 대립하고 혐오했던’ 주변화된 성적 정체성을 가진 주체들을 재현하고 있고, 그들의(혹은 우리의) 연대를 돕고 있다. 이는 젠더에 대한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이를 재현함으로써 이들을(우리를) ‘모두’로 묶기 위한 OTT의 상업적 전략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글로벌 콘텐츠를 기획할 수 없을 뿐 더러, 한류가 확산될 때의 이미지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한류는 이들을(우리를) 포용하고, 또다시 포함할 수 있을 만큼의 이미지를 갖추었는지, 국경을 넘어서는 모두의 문제를 다룰 만한 준비가 되었는지에 대한 답변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퀴어라는 용어와 미디어 다양성
퀴어(queer)라는 용어는 현대에 들어와 익숙해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전까지 대중문화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BL(Boys‘ Love)장르도 공공연하게 언급되고 있다. BL 웹소설이 원작인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시맨틱 에러>는 2022년 2월 첫 공개 후 반년 이상 플랫폼 TOP 10에 자리할 정도로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이뿐인가. <하트시그널>, <환승연애>등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감지됐다. 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인 <남의연애>는 러브 버라이어티에서 당연히 이성이 등장해야한다는 문법을 뒤집고 남성들‘만’이 등장해 애정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이뿐만 아니라 같은 플랫폼에서 제작된 <메리퀴어>도 성 소수자들의 현실적인 연애 스토리를 다루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콘텐츠 오픈 당시 웨이브 신규 유료 가입 경로 순위에서 <남의연애>와 <메리퀴어>는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OTT 오리지널 예능 <남의연애>(좌), <메리퀴어>(우)
(출처 : 웨이브 https://www.wavve.com)
(출처 : 웨이브 https://www.wavve.com)
그러나 ‘퀴어’라는 단어가 대중화됨에 따라, 용어의 사용에 학문적이고 역사적인 이해의 관점 혹은 감각을 망각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우리는 퀴어를 동성애와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거나(특히 남성 동성애) 동성애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혹은 그들의 문화를 지칭하는 단어로 단순화하기 쉽다. 그러나 퀴어와 동성애 혹은 동성애자는 동일한 범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퀴어 이론가 애너매리 야고스(Annamarie Jogose)는 퀴어란 “문화적으로 주변화 되어 있는 성 정체성을 통틀어 일컫는 것(Jagose, 1996/2012:7)”이라 정의내리고 있다. 문화적으로 주변화되어 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거나 가시화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다양한 섹슈얼리티 범주를 지칭1)한다.
1) 반면 BL콘텐츠는 퀴어콘텐츠와 구별된다. 대부분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상상하거나 욕망한다고 상정되는 BL콘텐츠는 남성 캐릭터들 사이의 연애담을 중심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창작물들을 가리킬 때 쓰인다. BL콘텐츠는 현실적인 남성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기보다, 사회적으로 여성들이 남성 동성 사회에 대하여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로맨스적 상상에 가깝다.
미디어+퀴어=?
다양성 연구 보고서를 공개한 넷플리스 홈페이지 화면
(출처 : 넷플릭스 https://about.netflix.com/ko/inclusion)
(출처 : 넷플릭스 https://about.netflix.com/ko/inclusion)
2021년 넷플릭스는 아넨버그 포용정책 센터(Annenberg Inclusion Initiative)에 위탁하여 조사된 다양성/포용 보고서(Inclusion/diversity report)를 발간한 바 있다. 넷플릭스가 이러한 보고서를 발간한 데는 자신들이 단순히 ‘잘 팔리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제작인력을 포용하고, 다양한 이용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브랜드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자 한 것으로 사료된다. 이러한 넷플릭스의 정치적인 위치 선점은 제작사와 이용자 모두 소수의 정체성과 취향에 주목하고 있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인류에게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 주제이자 가장 확산이 빠른 소재가 바로 사랑이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이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랑은 모두에게 일어난다. 그래서 전 세계인은 사랑을 다루는 콘텐츠를 주목하고 몰입한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이는 반대되거나 혐오되어져야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어떤 형태의 사랑을 외면하고 있다.
현재 미디어 산업은 글로벌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다. 글로벌 OTT의 경우 구독자를 유입하고 이들을 플랫폼에 고착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취향의 다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이러한 미디어 산업 생태계의 변화는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주류 문화’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이용자들은 OTT를 통해 다양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끊임없이 찾고 이를 소비하고자 하는데, 이렇게 변화된 이용자들의 미디어 관습은 기업들의 롱테일 전략과도 연결된다. 현재 미디어 이용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전시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미디어 생태계 변화는 퀴어나 BL 콘텐츠가 산업에서 공식적으로 가시화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한몫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왜 퀴어에, 그리고 미디어 재현과 콘텐츠에 다양하고 주변화되었던, 그리고 비가시화되어 있었던 섹슈얼리티에 주목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현실은 변화하고 있다. 2024년 10월 10일 혼인신고 불수리증을 받은 퀴어 부부 열한 쌍이 국내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성결혼이 가능한 나라는 전 세계 39개국이다. 이들이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콘텐츠를, 한류는 과연 이해하고 기획하며 제작하고 있는가.
이를 위하여 우리는 퀴어라는 개념, 더 나아가 미디어 다양성과 콘텐츠 산업을 엮어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만 한다. 콘텐츠 산업에서 거대 미디어 기업들은 하나의 콘텐츠 제작을 위하여 많은 시간을 기획에 투자하고, 자본을 투여하며, 광고와 협찬을 진행한다. 반면 퀴어라는 개념은 단순히 경험적인 측면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지지 않았던 섹슈얼리티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며, 사회적으로 ‘언급될 수 있음’ 혹은 ‘언급되지 못함’의 역사를 추적해 나가게 만드는 역동적인 힘을 가진 용어다. 그러므로 퀴어는 손쉽게 ‘상투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미디어를 통해 재현된 퀴어는 실제로 그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게 자신과 비슷한 존재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한다. 다양한 퀴어 콘텐츠를 통해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연대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퀴어 콘텐츠는 다각적인 시각을 가지고 접근해야하는 것일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녔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한류는 지금, 퀴어를, 그리고 더 나아가 주변화된 목소리와 얼굴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인류에게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 주제이자 가장 확산이 빠른 소재가 바로 사랑이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이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랑은 모두에게 일어난다. 그래서 전 세계인은 사랑을 다루는 콘텐츠를 주목하고 몰입한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이는 반대되거나 혐오되어져야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어떤 형태의 사랑을 외면하고 있다.
현재 미디어 산업은 글로벌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다. 글로벌 OTT의 경우 구독자를 유입하고 이들을 플랫폼에 고착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취향의 다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이러한 미디어 산업 생태계의 변화는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주류 문화’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이용자들은 OTT를 통해 다양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끊임없이 찾고 이를 소비하고자 하는데, 이렇게 변화된 이용자들의 미디어 관습은 기업들의 롱테일 전략과도 연결된다. 현재 미디어 이용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전시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미디어 생태계 변화는 퀴어나 BL 콘텐츠가 산업에서 공식적으로 가시화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한몫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왜 퀴어에, 그리고 미디어 재현과 콘텐츠에 다양하고 주변화되었던, 그리고 비가시화되어 있었던 섹슈얼리티에 주목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현실은 변화하고 있다. 2024년 10월 10일 혼인신고 불수리증을 받은 퀴어 부부 열한 쌍이 국내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성결혼이 가능한 나라는 전 세계 39개국이다. 이들이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콘텐츠를, 한류는 과연 이해하고 기획하며 제작하고 있는가.
이를 위하여 우리는 퀴어라는 개념, 더 나아가 미디어 다양성과 콘텐츠 산업을 엮어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만 한다. 콘텐츠 산업에서 거대 미디어 기업들은 하나의 콘텐츠 제작을 위하여 많은 시간을 기획에 투자하고, 자본을 투여하며, 광고와 협찬을 진행한다. 반면 퀴어라는 개념은 단순히 경험적인 측면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지지 않았던 섹슈얼리티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며, 사회적으로 ‘언급될 수 있음’ 혹은 ‘언급되지 못함’의 역사를 추적해 나가게 만드는 역동적인 힘을 가진 용어다. 그러므로 퀴어는 손쉽게 ‘상투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미디어를 통해 재현된 퀴어는 실제로 그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게 자신과 비슷한 존재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한다. 다양한 퀴어 콘텐츠를 통해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연대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퀴어 콘텐츠는 다각적인 시각을 가지고 접근해야하는 것일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녔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한류는 지금, 퀴어를, 그리고 더 나아가 주변화된 목소리와 얼굴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