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방송 이후, 프로그램의 성공에 관한 분석이 줄을 이었다. 흥행요인으로는 미션과 경쟁을 통한 성장 서사와 반전 드라마, 그리고 다른 개성의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점 등이 꼽혔다. 매주 에피소드가 공개될 때마다 새로운 인물과 사건, 그리고 그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으로 SNS 피드가 가득했던 걸 떠올린다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얘기다. <흑백요리사>의 낙수효과에 대한 소식도 끊임없이 들려온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건 F&B 업계다. 편의점은 앞 다퉈 <흑백요리사> 출연 셰프들과 협업한 상품을 출시해 완판 행렬을 이어갔고, 레스토랑 예약 서비스는 프로그램 출연 셰프들과 미식 팝업 이벤트를 진행했다. 한 홈쇼핑 업체는 <흑백요리사> 방송 이후부터 한 달간 주방용품 및 가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하고, 여행업계는 프로그램 흥행과 함께 미식여행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방송계도 예외는 아니다. 오는 12월 새로운 시즌을 방송 예정인 JTBC <냉장고를 부탁해>는 에드워드 리 셰프와 최강록 셰프를 섭외했다고 밝혔다. 한국형 요리 예능 포맷에 <흑백요리사>의 기운을 더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흑백요리사>는 한국의 요리 예능 프로그램이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경쟁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첫 번째 에피소드가 공개된 주에 380만 명의 시청자가 1,760만 시간을, 2주차에는 그 보다 28% 증가한 490만 명이 3,770만 시간을 시청했다. 권역별로 보자면 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 호응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별로는 싱가포르,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아주 높은 인기를 끌었고, 그 다음으로 태국,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모로코 등지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데이비드 임, 2024, 10, 11). <흑백요리사>의 인기가 내수시장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로 확장하는 시점에서 고려할 만 한 점은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흑백요리사>를 글로벌 전략 관점에서 세 가지 핵심요소를 중심으로 살펴보려한다.
어떻게 이와 같은 ‘한국형 경쟁서사’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방송에서 경쟁과 생존의 서사는 꽤 오래되었지만, 한국 프로그램이 이를 변주하는 방식이 동시대감각에 부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2000년대 이후 국내에서는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이에 대한 환호와 부침을 반복해 겪었다. 그러는 와중에 2010년대 들어 <나는 가수다>나 <복면가왕> 등의 서바이벌 포맷이 차례로 수출되었다. 2018년에는 SBS-바니제이 인터내셔널(Banijay International)이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더 팬(The Fan)> 포맷을 공동으로 개발했고, JTBC와 태국 지상파 채널 GMMTV가 요리 대결 프로그램 <팀셰프(The Team Chef)>를 합작으로 제작되는 등 국내시장을 넘어 다른 문화권 내에서도 한국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갖는 소구력이 있음을 증명했다(남지은, 2018).
<흑백요리사>의 담당PD들도 JTBC <싱어게인>, <슈가맨> 등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삼는 한편, 유사 포맷에 관한 심층 분석을 통해 심사위원과 규칙에서부터 볼거리와 공정성 이슈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형태의 서바이벌을 선보이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한국 제작진이 만든 <피지컬: 100>과 <흑백요리사>가 글로벌 플랫폼 상에서 연달아 성공하면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문법이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흑백요리사>는 바로 미디어 경험과 음식 경험이 등치된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흑백요리사> 출연자 식당의 ‘도장 깨기’, 심사위원의 미식 행사 이벤트 참여 인증, 우승자 레시피의 편의점 디저트 후기 등 방송과 함께 펼쳐진 양상은 동시대 음식 경험이 미디어를 통해, 미디어에 의해, 미디어를 위해 이뤄짐을 확인시켜준다. 그렇게 본다면 한식에 대한 경험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몸에 좋으니 김을 먹으라’는 메시지는 큰 파급력을 지니지 못하지만, ‘이모카세 1호가 직접 구워지는 김’은 <흑백요리사>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된다. 미디어에 의한 매개를 넘어 음식 경험은 이제 미디어 그 자체가 된 듯하다.
(출처: GS25 '우리동네GS' 어플리케이션, 캐치테이블 어플리케이션)
다른 한편으로 주목의 시장을 공략하는 무기는 ‘익숙한 (듯한) 새로움’이다. 모순적인 말처럼 들리는 이 방식을 실현하는 건 다름 아닌 캐릭터를 통한 스토리텔링이다. 수백 세기에 걸쳐 인류가 축적한 이야기의 원형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매번 그 이야기 안에 배치된 인물이 변화하고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흑백요리사>가 만든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통해 투사되는 스토리텔링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서의 성공을 넘어 한식세계화의 다음 걸음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단적인 예로 국가 단위의 이미지 브랜딩보다 미디어 퍼스널리티를 통해 전파된 음식 이야기가 실질적인 잠재고객층에 가닿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인생을 요리하라’는 미션에서 에드워드 리 셰프가 만든 비빔밥이나 이모카세 1호가 만든 국수가 이미 친숙한 메뉴임에도 이들의 이야기가 덧입혀지면서 특별한 음식으로 거듭난 것처럼 말이다.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이 주어짐으로써 ‘특정한 것’이 될 때, 주목은 한층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흑백요리사>가 관심의 시장에서 다른 콘텐츠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건 파생텍스트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원본으로서 <흑백요리사>가 밈, 패러디, 숏폼 콘텐츠 등으로 재생산되며 확산속도나 관심집중도가 한층 심화되었다. 지난 10월 말부터 넷플릭스가 원하는 화면을 저장하고 공유할 수 있는 ‘북마크’ 기능을 도입한 것도 파생텍스트 생성의 기술적 배경이 되었다(김수호, 2024, 10, 31). 이전까지 불법복제차단을 명목으로 철저히 제한해왔던 영역이 콘텐츠의 바이럴 주기를 견인하는 역할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전문 콘텐츠크리에이터 뿐 아니라, 일반 이용자들까지도 <흑백요리사>에서 화제가 되었던 장면과 발언을 활용하거나 다른 맥락의 콘텐츠와 접목시키면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흑백요리사>의 출연진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독자적인 미디어채널을 통해 참여 후기를 공유하고, 편집된 에피소드에 관한 코멘터리를 덧붙이는 등 <흑백요리사>를 둘러싼 미디어정경을 확대하는데 일조했다. 결과적으로 <흑백요리사>의 전편을 보지 않더라도 관련 파생텍스트를 소비하는 흐름을 만들어냄으로써 콘텐츠 브랜딩을 이뤄낸 것이다.
(출처: 넷플릭스 공식 유튜브 채널, 유튜브 채널 오늘의 예능(@todaydrama123), 썰단무지(@썰단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