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포커스|FOCUS 2

<흑백요리사>, 계급 전쟁을 넘어 세계로:
글로벌 전략 관점에서 본 3가지 핵심요소
강보라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이제 예능은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예능업계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이 전언은 부풀려진 것 같지만, 절대 과장이 아니다. 제작 기간, 제작 규모, 바이럴 속도, 글로벌 흥행 등 모든 측면에서 지금까지의 예능 프로그램을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다. <흑백요리사> 제작진의 인터뷰를 통해 언급된 투입인력과 자본을 감안하면 <흑백요리사>는 성공하지 못하면 안 되는 프로젝트에 가까워보인다. 제작 전 기존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과의 유사성을 피해가기 위해 400쪽이 넘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한 달에 걸려 1,000평 규모의 스튜디오에 40명이 동시에 요리할 수 있는 주방을 조성한 후, 100명의 출연자와 300여명이 넘는 스태프가 1년 2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제작에 매달렸다(서정민, 2024, 10, 26). 출연자들을 섭외하는 과정도 녹록지 않았다. 대중에게 노출된 정도가 극적으로 다른 스타와 신인을 함께 발굴해야 했다. 제작에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출연을 망설였다고 알려진 스타 셰프는 결국 프로그램의 최대 수혜자 중 한 명이 되었다(박종필, 2024, 10, 27). 이제 <흑백요리사>의 경쟁 프로그램은 새로 제작될 시즌 2가 될 것이다.

   <흑백요리사> 방송 이후, 프로그램의 성공에 관한 분석이 줄을 이었다. 흥행요인으로는 미션과 경쟁을 통한 성장 서사와 반전 드라마, 그리고 다른 개성의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점 등이 꼽혔다. 매주 에피소드가 공개될 때마다 새로운 인물과 사건, 그리고 그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으로 SNS 피드가 가득했던 걸 떠올린다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얘기다. <흑백요리사>의 낙수효과에 대한 소식도 끊임없이 들려온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건 F&B 업계다. 편의점은 앞 다퉈 <흑백요리사> 출연 셰프들과 협업한 상품을 출시해 완판 행렬을 이어갔고, 레스토랑 예약 서비스는 프로그램 출연 셰프들과 미식 팝업 이벤트를 진행했다. 한 홈쇼핑 업체는 <흑백요리사> 방송 이후부터 한 달간 주방용품 및 가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하고, 여행업계는 프로그램 흥행과 함께 미식여행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방송계도 예외는 아니다. 오는 12월 새로운 시즌을 방송 예정인 JTBC <냉장고를 부탁해>는 에드워드 리 셰프와 최강록 셰프를 섭외했다고 밝혔다. 한국형 요리 예능 포맷에 <흑백요리사>의 기운을 더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흑백요리사>는 한국의 요리 예능 프로그램이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경쟁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첫 번째 에피소드가 공개된 주에 380만 명의 시청자가 1,760만 시간을, 2주차에는 그 보다 28% 증가한 490만 명이 3,770만 시간을 시청했다. 권역별로 보자면 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 호응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별로는 싱가포르,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아주 높은 인기를 끌었고, 그 다음으로 태국,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모로코 등지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데이비드 임, 2024, 10, 11). <흑백요리사>의 인기가 내수시장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로 확장하는 시점에서 고려할 만 한 점은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흑백요리사>를 글로벌 전략 관점에서 세 가지 핵심요소를 중심으로 살펴보려한다.
1. 한국 제작자들은 경쟁과 생존서사에 최적화되어 있다.
2024년 11월 초를 기준으로 영상물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IMDb에 올라온 <흑백요리사>에 관한 평가는 약 1,600개 정도로 평균평가점수는 10점 만점에 8.5점을 기록했다. 미국 푸드네트워크의 대표 요리 서바이벌인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Iron Chef America)>가 7.5점을 받았고, 2023년에 만들어진 넷플릭스의 <피지컬: 100>의 평가점수가 7.7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점수임을 알 수 있다. 프로그램에 관한 42개의 리뷰 중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소모적인 드라마, 배신, 정치적 발언이나 질시 없는 리얼리티 쇼’로 ‘한국인들이 경쟁서사에 관한 최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는 실제 <부산행>, <오징어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과 같은 스크립트 콘텐츠를 통해서도 대중성을 인정받은 부분인데, <흑백요리사>를 계기로 논스크립트 콘텐츠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어떻게 이와 같은 ‘한국형 경쟁서사’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방송에서 경쟁과 생존의 서사는 꽤 오래되었지만, 한국 프로그램이 이를 변주하는 방식이 동시대감각에 부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2000년대 이후 국내에서는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이에 대한 환호와 부침을 반복해 겪었다. 그러는 와중에 2010년대 들어 <나는 가수다>나 <복면가왕> 등의 서바이벌 포맷이 차례로 수출되었다. 2018년에는 SBS-바니제이 인터내셔널(Banijay International)이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더 팬(The Fan)> 포맷을 공동으로 개발했고, JTBC와 태국 지상파 채널 GMMTV가 요리 대결 프로그램 <팀셰프(The Team Chef)>를 합작으로 제작되는 등 국내시장을 넘어 다른 문화권 내에서도 한국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갖는 소구력이 있음을 증명했다(남지은, 2018).
   <흑백요리사>의 담당PD들도 JTBC <싱어게인>, <슈가맨> 등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삼는 한편, 유사 포맷에 관한 심층 분석을 통해 심사위원과 규칙에서부터 볼거리와 공정성 이슈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형태의 서바이벌을 선보이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한국 제작진이 만든 <피지컬: 100>과 <흑백요리사>가 글로벌 플랫폼 상에서 연달아 성공하면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문법이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2. 오늘날의 음식 경험은 미디어를 통해, 미디어에 의해, 미디어를 위해 이뤄진다.
<흑백요리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두 번째 핵심요소는 오늘날 음식 경험을 논하는데 있어 미디어를 빼놓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TV를 통해 줄리아 차일드와 같은 ‘셀러브리티 셰프’가 탄생했던 1960년대를 거쳐 푸드 전문 케이블 채널인 푸드 네트워크(Food Network)가 출범한 1990년대에 이르러서도 미디어는 음식 경험을 매개하는 도구였을 뿐, 그 고유한 경험을 앞선다고 하긴 어려웠다(Rousseau, 2012). 하지만 소셜 미디어의 대중화와 함께 사람들이 좀 더 수평적인 선상에서 정보와 상호인정을 교환하기 시작하면서 미디어는 전통적인 음식 경험을 조금씩 위협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맛집 투어’와 ‘오픈런’, 좀 더 최근의 사례로는 ‘오마카세 열풍’이나 ‘트레이더 조(Trader Joe’s) 냉동 김밥 유행’이 그에 해당한다. 전통적인 음식 경험은 미디어보다 식욕이나 관습과 더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배고픔을 포만감으로 바꾸고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함으로써 효율을 키우는 등 음식이 다른 미디어에 의해 매개되기보다 신체 또는 정신과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방식을 띠었다. 그와 달리 오늘날 많은 이들은 우연히 접한 먹방 때문에 같은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고, 누군가의 맛집 피드를 보고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정보과잉 시대에 중요한 참조점으로 작용하며 어떤 음식을 선택하고 먹어야할지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나아가 자신이 먹는 음식에 대한 미디어전시가 곧 그 사람의 음식(문화)자본(culinary capital)으로 활용된다(Naccarato, P. & Lebesco, K. (2012). 그야말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진정한’ 음식 경험은 오롯이 미디어정경(mediascape) 안에서 펼쳐질 뿐, 그 밖에선 의미를 획득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흑백요리사>는 바로 미디어 경험과 음식 경험이 등치된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흑백요리사> 출연자 식당의 ‘도장 깨기’, 심사위원의 미식 행사 이벤트 참여 인증, 우승자 레시피의 편의점 디저트 후기 등 방송과 함께 펼쳐진 양상은 동시대 음식 경험이 미디어를 통해, 미디어에 의해, 미디어를 위해 이뤄짐을 확인시켜준다. 그렇게 본다면 한식에 대한 경험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몸에 좋으니 김을 먹으라’는 메시지는 큰 파급력을 지니지 못하지만, ‘이모카세 1호가 직접 구워지는 김’은 <흑백요리사>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된다. 미디어에 의한 매개를 넘어 음식 경험은 이제 미디어 그 자체가 된 듯하다.
<흑백요리사> 출연자 협업 메뉴와 팝업 이벤트 예시
(출처: GS25 '우리동네GS' 어플리케이션, 캐치테이블 어플리케이션)
3. 탈(脫)서구, 캐릭터-스토리텔링, 파생텍스트가 주목의 시장을 뒤흔든다.
<흑백요리사>는 오늘날 미디어 산업에서 대중의 관심이 미디어 콘텐츠의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문제는 대중의 관심이 무한정 공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미디어는 관심의 시장(marketplace of attention)에서 다른 미디어와 경쟁”할 수밖에 없다(Webster, J., 2014; 백영민, 2016). 여기서 대중적 관심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미디어가 무엇인지를 상정하는 것은 제작자들에게 큰 숙제다. <흑백요리사>의 선택 중 눈에 띄는 건 한국인 시청자를 최우선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제작진에 따르면 이는 넷플릭스 코리아의 뜻이기도 했다. 한국처럼 압축적으로 정보를 많이, 또 빨리 소비하는 환경이 콘텐츠의 성패를 가늠하기에 최적이라는 판단도 한몫했을 것이다. 음식 전문 온라인 매체인 이터(Eater)는 <흑백요리사>가 “서구 중심이 아니라 한국 음식과 요리 인재를 높이 평가해 달라는 요구”이며 “미국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것”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라고 분석했다(Sparks, J., 2024, 10, 29). 실제 <흑백요리사>가 많은 관심을 보인 게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의 대중이었고, 한국문화 경험률 및 이용 빈도가 높은 이들 또한 대만, 인도네시아, 태국 등 한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아시아 거주자임을 상기한다면 한국 음식 콘텐츠의 타깃을 굳이 서구권으로 한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다른 한편으로 주목의 시장을 공략하는 무기는 ‘익숙한 (듯한) 새로움’이다. 모순적인 말처럼 들리는 이 방식을 실현하는 건 다름 아닌 캐릭터를 통한 스토리텔링이다. 수백 세기에 걸쳐 인류가 축적한 이야기의 원형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매번 그 이야기 안에 배치된 인물이 변화하고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흑백요리사>가 만든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통해 투사되는 스토리텔링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서의 성공을 넘어 한식세계화의 다음 걸음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단적인 예로 국가 단위의 이미지 브랜딩보다 미디어 퍼스널리티를 통해 전파된 음식 이야기가 실질적인 잠재고객층에 가닿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인생을 요리하라’는 미션에서 에드워드 리 셰프가 만든 비빔밥이나 이모카세 1호가 만든 국수가 이미 친숙한 메뉴임에도 이들의 이야기가 덧입혀지면서 특별한 음식으로 거듭난 것처럼 말이다.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이 주어짐으로써 ‘특정한 것’이 될 때, 주목은 한층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흑백요리사>가 관심의 시장에서 다른 콘텐츠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건 파생텍스트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원본으로서 <흑백요리사>가 밈, 패러디, 숏폼 콘텐츠 등으로 재생산되며 확산속도나 관심집중도가 한층 심화되었다. 지난 10월 말부터 넷플릭스가 원하는 화면을 저장하고 공유할 수 있는 ‘북마크’ 기능을 도입한 것도 파생텍스트 생성의 기술적 배경이 되었다(김수호, 2024, 10, 31). 이전까지 불법복제차단을 명목으로 철저히 제한해왔던 영역이 콘텐츠의 바이럴 주기를 견인하는 역할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전문 콘텐츠크리에이터 뿐 아니라, 일반 이용자들까지도 <흑백요리사>에서 화제가 되었던 장면과 발언을 활용하거나 다른 맥락의 콘텐츠와 접목시키면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흑백요리사>의 출연진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독자적인 미디어채널을 통해 참여 후기를 공유하고, 편집된 에피소드에 관한 코멘터리를 덧붙이는 등 <흑백요리사>를 둘러싼 미디어정경을 확대하는데 일조했다. 결과적으로 <흑백요리사>의 전편을 보지 않더라도 관련 파생텍스트를 소비하는 흐름을 만들어냄으로써 콘텐츠 브랜딩을 이뤄낸 것이다.
<흑백요리사>의 밈과 패러디 등 파생텍스트 사례
(출처: 넷플릭스 공식 유튜브 채널, 유튜브 채널 오늘의 예능(@todaydrama123), 썰단무지(@썰단무지))
글로벌 시장에서 K-콘텐츠가 어떤 지점에서, 얼마나 오래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를 점치는데 있어 성공한 개별 콘텐츠를 한데 모아 국가적 차원의 집합적 특성을 도출하는 시기를 넘어서야함은 분명하다. 콘텐츠 소비 주기는 그 어느 때보다 빨라졌고, 미디어산업의 셈법은 훨씬 복잡해졌다. 음식 미디어 콘텐츠만 보더라도 정통성 논쟁이나 문화번역 문제 등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진 게 현실이다. 불확실성과 싸워나가야 함이 분명하다면 지금 확실하다고 믿는 사실을 의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영광은 과거형으로 머물 뿐이다.
참고문헌

김수호 (2024, 10, 31). "나야, 넷플릭스" 캡처 안 돼서 아쉬웠는데…OTT 최초로 '확' 바뀌는 기능은. <서울경제>.

남지은 (2018). K-포맷 비즈니스, 어디까지 왔는가. <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 3호 Vol. 16, 한국콘텐츠진흥원.

데이비드 임 (2024, 10, 11). 흑백요리사(Culinary Class Wars), 대만·홍콩·싱가포르에서 시청 초강세-일본과 인도는 저조, 다이렉트미디어랩. (검색일: 2024년 10월 29일). https://directmedialab.com/culinary-class-wars/

박종필 (2024, 10, 27). '흑백요리사' 모은설 작가 "대결보다 협력의 감동 남았죠". <한국경제>..

서정민 (2024, 10, 26). "스타 셰프들도 심사순서 예민했다" 결국 이 방법으로 [흑백요리사 비하인드]. <중앙일보>..

Naccarato, P. & Lebesco, K. (2012). Culinary Capital. London: Berg.

Rousseau, S. (2012). Food Media: Celebrity Chefs and the Politics of Everyday Interference. London: Berg.

Sparks, J. (2024, 10, 29). Review: Netflix’s ‘Culinary Class Wars’ Has an Ambitious Agenda. Eater. (검색일: 2024년 10월 30일). https://www.eater.com/24282824/culinary-class-wars-netflix-edward-lee-review

Webster, J. (2014). The Marketplace Of Attention: How Audiences Take Shape in a Digital Age. 백영민(역)(2016). 관심의 시장: 디지털 시대 수용자의 관심은 어떻게 형성되나.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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